1945년 3월10일 오전 0시7분 미군 폭격기에서 일본 도쿄 시내로 소이탄 38만발, 1660톤 가량이 투하되기 시작했다. 도쿄는 ‘불의 쓰나미’가 휩쓸었다. 강물 속으로 뛰어든 사람들마저 끓는 물에 죽어갈 정도였다. 하룻밤 동안 사망자는 10만명 안팎으로 추정된다. 당시 조선인도 약 1만 명이 사망했다.
신간 ‘어떤 선택의 재검토’는 77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정치적, 윤리적 논란의 대상인 도쿄 대공습의 과정을 파헤친다. 저자는 ‘타인의 해석’, ‘아웃라이더’, ‘티핑 포인트’ 등의 베스트셀러를 쓴 언론이 출신 말콤 글래드웰이다. 그는 미군 지도부가 도쿄 대공습을 결정하기까지 과정을 들여다봄으로써 이상과 현실, 의도와 선택의 괴리 문제를 다룬다. 대규모 민간인 대량 살상을 낳은 이 참사가 원래 더 많은 목숨을 살릴 수 있다는 선의와 희망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원제 ‘폭격기 마피아(The Bomber Mafia)’는 일본 본토 공습 주역이던 미 육군항공대 소속 지휘관들을 가리킨다. 그들의 모토는 ‘우리는 관습에 구애받지 않고 진보한다’ 였다. 이들은 육군·해군에 비해 인력 등 자원이 절대적인 열세였던 만큼 과학기술의 힘을 빌려 이전과는 다른 혁신적인 전쟁을 꿈꿨다. 즉 당시 최신예 폭격기를 이용한 ‘고고도 주간 정밀폭격’을 통해 민간인 인명 피해를 줄이고 적국의 군수산업만을 정밀 폭격하고자 했다.
문제는 과학기술이 그들의 이상을 뒷받침할만큼 충분히 발전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일본 상공에서는 허리케인과 맞먹는 풍속의 제트기류가 불면서 폭격의 정확도가 떨어졌다. 결국 미군 지휘부는 ‘폭격기 마피아’의 계획을 철회하고 이전처럼 야간에 가능한 많은 폭탄을 떨어뜨리는 무차별 폭격을 단행한다. 짧은 기간에 가능한 한 많은 피해를 입히면 전쟁이 빨리 끝나 궁극적으로는 민간인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논리였다. 과연 누구의 선택이 올바른 것이었을까. 저자는 폭격기 마피아가 휴머니즘에 기반해 양심과 의지를 지켰다고 말한다. 반면 당시 미군 지도부는 충분한 숙고와 검토를 하지 않은 채 인종차별적인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무고한 민간인들을 학살했다고 은연 중에 꼬집는다.
“양심과 의지를 적용해야만 해결할 수 있는 일련의 도덕적 문제가 있다. 그것은 대단히 어려운 종류의 문제이다. 반면 인간의 독창성을 적용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도 있다. 폭격기 마피아의 천재성은 그 차이를 이해한 것이다.” 1만5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