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단독] 망사용료法 보류…의원들 마음 바꾼 배경엔 산자부FTA 문건이

산자부에서 만든 '한미 FTA' 조문 관련 문건

법안 소위 열리기 전 각 의원실에 전달·열람

통신 관련 차별 또는 부당한 조건 부과 금지

의원들 이해관계자 의견듣는 공청회 열기로

통신업계 "국내외 동일한 의무…차별 없다"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정보통신방송법안심사소위원회(법안2소위)가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렸다. 김영식 과방위 국민의힘 간사가 회의를 주재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 제공=연합뉴스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정보통신방송법안심사소위원회(법안2소위)가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렸다. 김영식 과방위 국민의힘 간사가 회의를 주재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 제공=연합뉴스




국회가 넷플릭스 등 해외 콘텐츠회사(CP)에 망 사용료를 강제하는 법을 추진하다가 잠시 보류하고 공청회를 열기로 했다. 당초 처리에 속도를 내는듯 했다가 신중론에 무게를 싣는 쪽으로 분위기가 바뀐 것이다. 이 과정에서 통상 문제를 우려하는 한미(韓美) 자유무역협정(FTA) 관련 한 문건이 법안을 심사하는 각 의원실에 전달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24일 국회 및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 21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법안2소위 소속 각 의원실에는 산업통상자원부(산자부)에서 작성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망 이용료) 관련 한-미 FTA 조문’이란 제목의 자료가 돌았다. 같은 날 오후 4시로 예정됐던 소위원회가 열리기 이전이었다. 국회 관계자는 “한 관계자가 법안을 발의한 의원실에 찾아가 먼저 전달했다”며 “해당 의원실에서 검토한 뒤 다른 의원실에도 보여줄 것을 주문했다”고 말했다.

한미 FTA “망 접근·이용에 어떤 조건도 부과돼선 안 돼”


산업통상자원부에서 만든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관련 한-미 FTA 조문’ 자료.산업통상자원부에서 만든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관련 한-미 FTA 조문’ 자료.


이 문건에는 통신망의 ‘차별’ 또는 ‘접근·이용에 대한 조건 부과’를 해서는 안 된다는 FTA 협정문이 담겼다. 협정문 제14장 ‘통신’ 파트의 조문이다.

여기서 제14.2조 제1항은 ‘국경을 건너 제공되는 모든 통신 망 또는 서비스가 합리적이고 비차별적인 조건으로 접근·이용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예컨대 미국, 일본 등 해외에서 넘어오는 통신 서비스가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어 문건에 적시된 제5항은 구체적으로 해서는 안 될 차별행위를 기술했는데 특정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망 접근·이용에 대해 어떠한 조건도 부과되지 않도록 보장하라’는 내용이었다.

이후 열린 소위에서 의원들은 망 사용료법을 당장 처리하는 대신 여러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청취할 필요가 있다는 데 공감대를 모았고 심사에 앞서 공청회를 열기로 결정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윤영찬 의원은 “자유계약 원칙을 훼손하고 우리 기업의 해외 진출 시 역차별 근거가 될 위험도 있다”며 “네트워크 트래픽에 대한 원칙, 근거 없이 요금을 내라는 주장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소위가 열리기에 앞서 산자부뿐만 아니라 주한 미대사관의 우려 표명도 있었다. 크리스토퍼 델 코소 주한 미국 대사 대리는 주한미국상공회의소가 주최한 한 세미나에서 망 사용료법을 겨냥, “외국 기업에 그들의 혁신과 투자가 환영받지 못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내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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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국 CP 모두 해당하는 규제” vs “사실상 특정 기업 겨냥한 차별”


사진 제공=이미지투데이사진 제공=이미지투데이


실제 망 사용료법이 통상 문제로 불거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업계, 학계 내 의견이 분분하다. 위험하다고 보는 측에서는 망 사용료법이 해외 기업을 타깃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FTA 협정은 (형식적인) 법 조문상으로만 차별을 금지하는 게 아니라, 그 효과나 의도가 차별적이어서도 안 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며 “망 사용료법은 아예 외국 CP에 적용될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 협정 위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 국제법 전문 대형 로펌 변호사는 “법 자체로는 국내 CP, 해외 CP 모두 해당되는 내용이어서 문제가 없어 보일 수 있다”며 “하지만 국내 통신사에만 연결된 국내 CP와, 해외 통신사를 통해 국경을 건너 한국에 오는 해외 CP 사이의 특성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양측이 똑같은 망 사용료를 내라는 것은 사실상 차별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통신 업계에서는 망 사용료법이 국내외 사업자에게 동일한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고 정반대로 해석하며 한미 FTA 위반 및 통상마찰 우려가 없다고 반박한다. 업계 관계자는 “정당한 망 이용대가를 지급하지 않는 콘텐츠 사업자를 규제하는 것일 뿐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 규제도, 내국민대우 원칙 위반도 아니다”라고 했다. 내국민대우는 각 국가가 조세, 규제 등에 있어 국내외 제품·서비스를 똑같이 취급해야 한다는 무역 기본 원칙을 말한다. 이 관계자는 또 “이미 망 사용료법과 유사한 내용의 입법이 유럽연합(EU) 등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지난 2월 열린 세계이동통신사업자연합회(GSMA)에서도 전 세계 통신사업자들이 대형 CP들의 망 비용 분담에 대해 논의하기도 했다. 향후 한국을 넘어 EU, 미국까지 관련 입법이 추진될 것이기 때문에 통상 마찰 우려는 더욱 낮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외교부 한미FTA 자문위원 출신인 이한영 중앙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내국민 대우와 관련한 차별은 법조문 자체를 비롯해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지금으로서는 법안 내용이 확정된 게 아니기 때문에 섣불리 단정할 수 없는 단계다. 다만 망 사용료법이 FTA에서 예외로 합의한 조치에 해당될 수 있는지, 앞으로 하위법령 제정과 법집행을 통해 사실상 차별로 이어질 수 있는지 여부 등이 주요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법원 1심 판결에도 평행선 달리는 망 사용료 갈등




국내에서는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 간 망 사용료를 두고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1심 판결이 났고 현재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1심에서는 넷플릭스가 “망 이용 대가를 내는 게 맞다”고 판결하면서도 “다만 대가 지급 방식은 금전뿐만 아니라 비용을 절감해주는 인프라 지원 등도 가능하기 때문에 양 측이 합의를 통해 결정하라”고 단서를 달았다.

SK브로드밴드는 망 사용료로 매년 수 백억 원씩 내는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CP와 달리 넷플릭스, 유튜브 등 해외 CP는 망 사용료를 한 푼도 내지 않아 ‘무임승차’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내 네트워크 망 트래픽의 대부분이 해외 CP에서 발생하고 있는데 시설 유지·관리에 아무런 부담을 지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한다. 반면 해외 CP들은 자신들이 SK브로드밴드를 통해 인터넷에 접속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망 사용료를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맞서고 있다. 이미 해외에서 통신망 접속을 했으면 이후 문제는 통신사끼리 해결할 문제라는 논리다. 국내 CP들은 망 사용료를 강제하는 입법으로 기존보다 비용 부담이 늘고 해외에서 역차별 받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


박현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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