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복을 입고 열병식에 나타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6일 핵무기를 전쟁 억제뿐 아니라 선제공격에 활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불과 나흘 전 문재인 대통령과 교환한 친서에서 “정성을 쏟으면 얼마든지 남북 관계가 개선되고 발전할 수 있다”고 밝혔는데 태도가 180도 달라진 것이다. 전문가들은 대북 강경책을 검토 중인 윤석열 정부에 대해 강력한 경고의 의미를 담았다고 평가한다.
이날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전날 열린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우리 국가가 보유한 핵 무력을 최대의 급속한 속도로 강화 발전하려는 조치를 계속 취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또 “우리 핵 무력의 기본 사명은 전쟁을 억제함에 있지만 전쟁 방지라는 하나의 사명에만 속박돼 있을 수는 없다”며 “어떤 세력이든 우리 국가의 근본 이익을 침탈하려 든다면 우리 핵 무력은 자기의 둘째가는 사명을 결단코 결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핵무기 사용이 전쟁 방지뿐 아니라 적대 국가에 대한 선제 타격 목적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고 밝힌 것이다.
김 위원장은 또 “공화국의 핵 무력은 언제든지 철저히 준비돼 있어야 한다”며 “핵 무력을 강화하여 임의의 전쟁 상황에서 핵 전투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의 이 같은 발언은 최근 문 대통령과 교환한 친서 내용과 상당한 차이가 난다. 김 위원장은 20~21일 문 대통령과 교환한 친서에서 “평화와 번영을 위해 함께했던 나날들이 감회 깊이 회고됐다”며 “정성을 쏟으면 얼마든지 남북 관계가 개선되고 발전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대북 전문가들은 북한의 태도 변화가 다음 달 10일 취임할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을 향한 경고라고 평가한다. 문성묵 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윤 당선인을 향해 문재인 정부와 마찬가지로 대북 유화책을 활용하고 강경책으로 선회하지 말라는 압박을 가한 것”이라며 “그렇지 않을 경우 핵 무력을 선제공격용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김 위원장은 핵 개발 목적과 관련 자위뿐 아니라 공격용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며 “이 경우 일차적 대상은 한국이 될 수밖에 없는데 결국 남측의 새 정부에 대한 압박의 목적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북한의 7차 핵실험도 임박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북한은 2017년 6차 핵실험 이후 2018년 남북정상회담·북미정상회담 등을 거치며 추가 실험을 중단했다. 하지만 올 1월 핵 개발 유예(모라토리엄) 선언을 파기한다고 밝힌 후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일대에서 시설 복원 징후가 속속 포착되고 있다. 위성사진 분석 결과 폐쇄 조치했던 3번 갱도의 평탄화 작업 등이 이뤄지는 것으로 보이는데 장비 반입 등이 조만간 이뤄질 것으로 평가된다.
남 교수는 “북한에서 최고 권한을 지닌 김 위원장이 핵 무력을 급속도로 강화하겠다고 발언한 만큼 핵실험은 확정된 수순”이라며 “다음 달 10일 윤 당선인의 대통령 취임이나 22일 한미정상회담 직전에 7차 핵실험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역시 “김 위원장이 높은 수준의 공세적인 핵전략을 밝힌 만큼 북한이 핵실험에 속도를 더 낼 수밖에 없다”며 “핵실험이 예상보다 빠른 시일 내에 이뤄질 가능성이 있으며 이에 따라 한반도 긴장이 고조될 위험성이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