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님의 전화 공격에도 AI처럼 차분히 대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전화 컨닝 패드’, 규칙적인 생활 습관 ‘갓생 시계’…
사회초년생 MZ세대라면 한 번쯤은 귀가 솔깃할 만한 상품들이다. 여기에 귀여운 동물 캐릭터까지 곁들여져 있다면 충동 구매 가능성은 더 높아질 테다.
해당 두 제품은 실제로 출시가 됐거나 예정돼 있는 제품이다. 반전은 굿즈 전문 회사가 아닌, 대형 게임사 엔씨소프트(036570)(NC)와 스마일게이트가 내놓은 상품이라는 것. 그것도 단순히 ‘리니지’나 ‘로스트아크’ 캐릭터를 그대로 쓴 게 아니라 최근 MZ세대를 주 타깃으로 론칭한 캐릭터 브랜드 ‘도구리’와 ‘스마일펫’을 활용한 굿즈다.
이처럼 게임사들은 최근 캐릭터 사업 확대로 분주하다. MZ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매력적인 캐릭터와 실용적인 굿즈로 기존 게이머들 외 대중과의 접점 찾기에 나섰다.
‘막내 키트’가 뭐길래…하루만에 1000만원 몰렸다
"직장 생활에 지친 막내라고? 막내클럽에 합류하거라!"
28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엔씨소프트는 지난 27일부터 와디즈에서 도구리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한 '막내클럽 웰컴키트' 굿즈 펀딩을 시작했다. 펀딩 시작 하루만에 1000만 원이 넘는 모금액이 몰렸고, 이내 목표 금액(644만 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웰컴키트는 사회초년생들의 원만한 회사 생활을 위한 ‘필수템’들로 구성돼 있다. 퇴사 욕구가 샘솟을 때 읽으면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는 ‘솔루션 카드’, 불시에 오는 전화에 완벽히 대비할 수 있도록 전화 꿀팁이 적혀 있는 '전화 컨닝 패드' 등이 대표적이다.
막내클럽은 고단한 막내 생활에 지친 도구리가 같은 처지의 막내들을 위로하기 위해 만든 비밀조직이다. 지난해 말 개장한 막내클럽 웹사이트에는 벌써 30만 명이 방문했으며, 이 중 5만 명이 입단해 '막피아(막내+마피아)'의 길을 걷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로스트아크'로 유명한 게임사 스마일게이트도 오는 5월 중 '갓생시계' 굿즈를 출시할 예정이다. 갓생(God+인생)이란 착실하고 만족도 높은 삶을 뜻하는 신조어다. 최근 MZ세대 사이에서 하루 만 보 걷기, 물 2L 마시기 등 생활 루틴을 세우고 인증하는 ‘갓생살기 챌린지’가 유행하고 있다는 점을 공략했다. 스마일게이트 측은 “이 시계는 진도의 귀여움을 담은 것은 물론, 시계 배경을 갈아 끼울 수 있게 하고 계획표 속지도 제공하는 등 DIY 형태로 제작될 것”이라고 전했다.
우당탕탕 회사 막내 도구리, 창업하는 댕댕이 진도…MZ 취향 정조준
도구리는 엔씨소프트가 리니지2M에 등장하는 도둑너구리를 모티브로 삼아 지난해 1월 론칭한 캐릭터다. 게임 속 도둑너구리는 레벨이 낮은 사냥터에 등장하고 나뭇가지나 툭툭 던져대는, 한 마디로 별 볼 일 없는 캐릭터다.
하지만 엔씨는 이같은 ‘하찮음’에서 사회초년생들의 공감을 자아낼 수 있는 가능성을 엿봤다. 실제 도구리는 좌충우돌 직장 막내생활을 그린 '또 도사원' 웹툰 등으로 MZ세대들의 공감을 얻으며 3만 명에 육박하는 인스타그램 팔로어를 확보했다. 최근 유행하는 MBTI 테스트 형식을 차용한 직장인 생존유형 테스트에는 500만 명 이상이 참여했다. 인기에 힘입어 엔씨는 지난 3월 강남에서 팝업스토어를 열었고, 올해 하반기에도 또 다른 팝업스토어를 계획하고 있다.
비교적 ‘뉴페이스’인 진도는 스마일게이트가 지난해 6월 출시한 캐릭터 IP인 '스마일펫'의 일원이다. 진도는 지구인들의 행복을 위해 사업가가 되기로 결심한 '사업하는 댕댕이(멍멍이)'다. 창업을 할 정도로 용감한 댕댕이지만, 주인이 다른 강아지를 안아주자 질투하는 등 반려동물만의 사랑스러운 매력도 보여주며 호응을 얻고 있다.
카카오 ‘춘식이’처럼…캐릭터 사업 흥행 핵심은 “매력적인 세계관”
게임사들이 캐릭터 사업에 뛰어든 것 자체는 오래된 일이다. 넥슨은 이미 지난 2000년대 초반부터 라이선스사업팀을 갖추고 있었고, 넷마블도 지난 2018년 게임업계 최초로 상설 오프라인 캐릭터샵을 한 바 있다.
다만 그간 출시한 대부분의 캐릭터 굿즈는 단순히 귀여운 외형을 부각하는 수준에서 그쳤다. 반면 ‘도구리’와 ‘진도’는 각각 공감을 살 수 있는 설득력 있는 스토리를 통해 팬덤을 끌어모은다. 이는 가상의 캐릭터를 의인화해 ‘덕질’하는 것을 즐기는 MZ세대의 특성을 반영한 전략이다. 업계 관계자는 "디지털 네이티브인 MZ세대는 가상의 캐릭터와 함께 소통하면서 세계관을 공유하는 것을 하나의 재밌는 놀이 문화로 여긴다”고 말했다.
캐릭터 사업의 선두주자인 포털업계에서는 이미 이같은 전략을 통해 수 차례 성공을 거둔 바 있다. 예컨대 카카오가 지난 2020년 선보인 ‘춘식이’는 라이언이 ‘냥줍’한 길고양이라는 콘셉트로 단숨에 인기스타로 부상했다. 견고한 팬덤에 힘입어 카카오는 지난해 '라이언'과 '춘식이'를 댄스듀오로도 데뷔시켰다. 에스파 '넥스트 레벨' 커버 영상은 틱톡에서만 840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라인 자회사 IPX(구 라인프렌즈)의 'BT21'도 막강한 팬덤을 보유하고 있다. BT21은 방탄소년단(BTS)과의 콜라보로 유명세를 탄 라인프렌즈의 대표 IP다. 멤버 ‘진’의 캐릭터 ‘RJ’는 지난해 유튜브에서 핫도그 먹방을 선보였는데, 공개 3시간 만에 조회수 15만, 현재까지 누적 조회수는 300만 회를 돌파했다.
‘탈게임’ 분주한 게임사들, 캐릭터로 대중 공략
게임사들이 캐릭터 사업을 확대하는 건 결국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기 위한 전략이다. 친근감 있는 캐릭터를 내세워 기존 게임 유저층 외로도 이용자층을 넓히기 위한 것. 캐릭터 인기가 높아질 시 굿즈 라이선스 사업을 통해서도 쏠쏠한 이익을 거둘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일례로 카카오의 캐릭터 사업 담당 법인이었던 카카오IX의 매출은 지난 2016년 705억 원에서 커머스 부문과 합병하기 전인 2019년까지 1536억 원으로 두 배 이상 뛰었다.
게임사들은 캐릭터 사업에서 이미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 리니지2M 속 별 존재감 없던 도둑너구리를 재발견해 ‘도구리’를 탄생시킨 것처럼, 그간 쌓아온 게임 속 IP를 발굴해 매력적인 캐릭터로 재가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기 때문. 엔씨 관계자는 “게임 속 오리지널 게임 캐릭터를 MZ세대에게 사랑받는 형태로 최적화해 캐릭터 IP 경쟁력을 강화하고자 한다”며 “디자인 컨셉은 물론 성격, 태도 등 캐릭터 고유의 정체성까지 창조하고 이를 활용한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