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국내증시

너도나도 마케팅조직 등 신설…금투업계 'OCIO 몸집 불리기' 가열

[300조 퇴직연금 DNA를 바꿔라]

<하> 주목받는 DB형 OCIO시장

퇴직연금 1분기 48조로 급증

증권·운용사 전문인력 양성 등

OCIO 역량 높이기 적극 나서

원가이하 운용보수 개선은 과제





확정급여(DB)형 퇴직연금 외부위탁운용관리(OCIO) 시장을 차지하기 위한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간 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업계는 최대 1000조 원대로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퇴직연금 시장을 미래의 먹거리로 선정하고 관련 역량을 앞다퉈 키우고 있다. 특히 올해부터 DB형 퇴직연금을 도입한 회사들이 목표 수익률를 비롯한 운용 방안을 제시하는 적립금운용위원회 및 계획서가 도입되면서 기업들도 적극적으로 외부 위탁 방안을 강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전문가들은 원가 이하의 보수 인하 등 과도한 출혈 경쟁이 개선되지 않을 경우 퇴직연금 운용 체계가 왜곡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2일 금융감독원과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퇴직연금 상품을 운영하지 않는 키움증권과 메리츠증권을 제외한 8대 증권사의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2019년 30조 1844억 원에서 2022년 1분기 48조 6035억 원으로 61% 급증했다.

퇴직연금 시장이 날로 커지는 가운데 올해 퇴직연금 제도 개편이 본격화하면서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들의 움직임도 분주해졌다. 앞으로 회사들이 퇴직연금을 적극 운용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되는 만큼 대규모 자금이 시장으로 유입될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지난달 14일부터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시행령 개정안이 시행에 들어갔다. 이는 300인 이상 DB형 퇴직연금 사용자는 적립금운용위원회 심의를 거친 적립금운용계획서(IPS)에 따라 적립금을 운용해야 한다. 또 30인 이하 중소기업 근로자의 안정적인 노후 생활 보장을 위해 ‘중소기업 퇴직연금기금 제도(중소퇴직기금)’가 도입됐다. 시행령에 따라 기금·관리 운용 업무는 집합투자업자(자산운용사)와 투자일임업자(증권사)가 맡을 수 있게 된다. 그 방식으로 OCIO가 주목받고 있다. OCIO란 최고투자책임자(CIO)의 역할과 기능을 외부에 맡긴다(outsourcing)는 뜻으로 전통적인 일임 위탁과 달리 일정 부분의 의사 결정 권한이 위탁 운용사에 위임된다. 인력과 비용 문제 등으로 전술적 자산 배분이 쉽지 않은 기업은 OCIO를 통해 외부 투자 전문 회사로부터 자산 운용의 계획과 실행·평가 등 체계적이고 안정적인 자산 관리 컨설팅을 받을 수 있게 된다. 특히 원금 보장 DB형 퇴직연금 상품의 2%대 낮은 수익률에 고민이 많은 기업은 OCIO 제도를 활용해 3~4%대 수익률을 노려볼 수 있다.

전용우 삼성자산운용 연금 OCIO팀장은 “수탁 운용사는 위탁자에게 투자 기간과 목표 수익률, 자금 운용 방식 전반에 대한 종합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한다”며 “현재 국내 OCIO는 사모펀드 형태로 운용되고 있고 투자 대상은 주식과 채권이며 손실을 헤지하기 위해 대체 자산에도 투자한다”고 말했다. 삼성자산운용의 OCIO 자금 운용 포트폴리오 중 ‘안정형’은 목표 수익률 3.5%에 채권 자산(60%), 국내외 주식(20%), 대체 자산(20%)으로 구성돼 있다. 목표 수익률에 미달하는 상태로 일정 기간이 지속될 경우 운용사는 고객에게 중간 보고를 통한 포트폴리오 조정 등 리스크 관리도 용이하다. 이 같은 장점 때문에 최근 현대백화점과 대우건설 등 기업들은 자산운용사와 OCIO 계약을 체결하며 관심을 표하고 있다.

자산운용사에서 OCIO를 담당하는 한 관계자는 “기업들이 최근 금리 인상 등 변동성이 큰 장세에서 자산을 전략적으로 운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아직 초기 단계지만 OCIO를 통해 자산을 안정적으로 관리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자산운용사와 증권사들은 DB형 퇴직연금 시장이 앞으로 커질 것으로 보고 OCIO 조직을 경쟁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21년 말 기준 DB형은 약 171조 원으로 약 76조 원의 DC형보다 적립금 규모가 크다. 증시 전문가들은 아직 4조 원대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되지만 중소퇴직기금 제도가 안정적으로 연착륙하고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가 자리잡을 경우 OCIO 시장 규모가 향후 1000조 원까지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100조 원대로 추산되는 국내 각종 기금의 OCIO 시장의 주도권은 자산 운용 업계가 쥐고 있다. 삼성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이 각각 40조 원, 30조 원으로 전체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운용사들은 노하우를 살려 퇴직연금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삼성자산운용은 지난해 말 연금OCIO 전담 마케팅 조직을 만들고 퇴직연금 사업자와의 협업을 통해 기업 DB 맞춤형 OCIO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미래에셋자산운용도 2020년 11월 ‘마케팅 3부문’을 신설하고 기존 OCIO 사업을 담당하던 투자플랫폼기획본부를 편입하며 기존 본부 단위에서 펼치던 OCIO 사업을 부문 단위로 확대했다. KB자산운용 역시 연금 운용을 담당하는 글로벌운용본부·OCIO본부·채권운용본부 3개 본부를 통합한 연금&유가증권 부문을 만들며 OCIO 운용 역량 강화를 본격화했다. 신한자산운용도 2021년 8월 OCIO본부 내에 퇴직연금 등 민간 기금을 전담 운용하는 OCIO솔루션운용팀과 자문 컨설팅, 성과 평가 및 위험 관리를 담당하는 OCIO솔루션컨설팅팀을 만드는 등 수성에 사활을 걸고 있다.



증권사들은 자산운용 업계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OCIO 시장에 속속 출사표를 던지며 지각변동을 예고했다. NH투자증권(005940)은 지난해 7월 OCIO사업부를 신설한 데 이어 그동안 OCIO 스쿨을 통해 150여 명의 OCIO 전문 인력을 양성해 가장 활발한 행보를 이어갔다. 미래에셋증권(006800)은 지난해 기금운용팀과 OCIO컨설팅팀을 구성하고 기존 OCIO솔루션팀을 멀티솔루션본부 산하로 이동하며 몸집을 키웠다. 삼성증권(016360)도 지난해 OCIO 운용팀을 꾸리며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KB증권의 OCIO운용부는 현재 약 1조 4000억 원에 달하는 OCIO 운용자산(AUM)과 별도로 2020년 말부터 약 1100억 원 수준의 DB형 펀드 운용 자문을 담당하며 기반을 다지고 있다. 한국투자증권도 올해 초 투자솔루션 본부 산하에 OCIO솔루션부를 만들었고 신한금융투자도 1월 기존 홀세일 소속 OCIO센터를 OCIO본부로 확대 개편했다. 하나금융투자도 지난해 11월 OCIO팀을 신설하고 자문형 OCIO 펀드를 6월 중 출시할 계획을 세우는 등 증권사들이 OCIO 시장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증권 업계의 한 관계자는 “증권사는 퇴직연금 사업자로 퇴직연금 자금을 운용한 경험이 있는 만큼 OCIO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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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과열 경쟁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지난해 한 운용사는 대형 기금 운용 사업자 선발에 운용 보수 2.9bp(1bp=0.01%)와 운용 인력 30명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며 경쟁에 불을 댕겼다. 현재 기금 운용 보수는 업계에서 대체적으로 약 3bp대인 것으로 파악됐다. 자산 운용 업계의 한 관계자는 “미국이나 유럽의 운용 보수에 비해 국내 운용 보수는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터무니 없는 가격”이라며 “독점적 지배자가 되기 위해 손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OCIO 시장 초기 단계임에도 금융투자 업계의 저가 수주 문제는 더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출혈 경쟁으로 사업성 악화가 누적될 경우 부실한 자문 등 서비스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OCIO 시장에 대한 높은 진입 장벽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다. 국내에서는 기금 규모와 상관없이 OCIO 계약 때 최소 20명 이상의 과도한 전담 운용 조직을 요구하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수익을 내기 위해 투자 전문사가 중소형 기금보다 대형 기금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

박우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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