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최저임금에 대한 노사의 장외 여론전이 한창이다. 지금은 최저임금을 올릴 때가 아니라 300만 명도 넘는 최저임금 미만 근로자를 줄이는 것이 급선무라는 한국경영자총협회의 주장에 대해 노동계는 치솟는 물가를 감안할 때 큰 폭의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반박한다. 과거와 달리 윤석열 정부는 비교적 중립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관계자들은 일찌감치 내년도 최저임금에 대한 의견이 없음을 공식화했다.
새 정부에서 최저임금 제도에 대한 근본적 개혁이 필요하다는 요구도 있었지만 인수위는 이를 국정 과제에 포함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왜 그랬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런 중립적 태도는 매우 현명한 선택이라고 하겠다. 왜냐하면 문재인 정부에서 최저임금이 시끄러웠던 근본 이유는 제도의 결함 때문이 아니라 정권 의지에 따라 인상률이 널뛰기를 하며 시장을 혼란에 빠뜨렸기 때문이다. 2018년 16.4%와 2019년의 10.9% 인상은 2020년 최저임금 1만 원 달성이라는 공약을 실현하기 위한 정치적 결정이었을 뿐 합리적 근거는 없었다. 그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정부가 재정을 쏟아붓고 국회는 최저임금 산입 범위를 확대하는 등 온갖 소란을 피웠지만 과속 인상에 대한 시중의 공포는 사라지지 않았다. 최저임금을 업종과 지역에 따라 차등화하자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지금의 최저임금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수준의 문제를 제도 개혁으로 풀겠다는 발상은 꼬인 실타래를 더욱 꼬이게 할 뿐이다. 차라리 최저임금 수준의 적정성에 대한 국제 비교 분석에 힘을 쏟고 인상률의 결정 기준을 좀 더 명확히 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노무현 정부 이후 20년 가까이 최저임금은 정치 바람을 탔다. 양극화 완화라는 사회적 공감대도 있었기 때문에 경제성장률의 2~3배에 달하는 과속 인상도 쉽게 받아들여졌다. 최저임금은 분배 개선을 위한 주요 정책 변수로 부각됐고 노 정부는 최저임금을 최대한 끌어올려 연평균 성장률의 2.3배에 달하는 10.5%씩 인상했다. 그 반작용으로 이명박 정부는 연평균 인상률을 5.2%로 끌어내렸다. 미스터리한 시기는 박근혜 정부 때다. 최저임금 인상률이 성장률의 2.6배에 달하는 7.4%를 기록하며 노무현 정부를 능가했다. 문재인 정부는 이를 더욱 가속해 성장률의 3배가 넘는 연평균 7.2%를 인상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한국의 최저임금은 이제 매우 높은 수준에 올라 있다. 이미 중위 임금의 65%를 넘어 프랑스를 비롯한 몇몇 나라와 상위권을 다투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는 최저임금을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할 시기다.
최저임금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최선의 방법은 정부가 손을 떼고 최저임금위원회에 모든 결정을 맡기는 것이다. 정권이 관심을 보이는 순간 노사는 정부를 끌어들여 전국 단위 임금 교섭을 벌이듯 장외 힘겨루기에 나서게 되고 인상률은 널뛰기를 하게 된다. 정부가 최저임금위원회 9명의 공익위원을 믿고 맡겨두면 그들은 자기 책임하에 노사 협상을 조율해갈 능력이 있다. 최임위는 그동안 축적된 전문성과 최저임금법 규정에 따라 성장률과 물가, 유사 근로자의 임금과 소득분배지수 등을 고려해 적정 최저임금 수준을 도출할 수 있다. 박준성 성신여대 명예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2005년 이후 최저임금 결정은 성장률 또는 보통 근로자의 임금 인상률을 주된 기준으로 삼았고 여기에 약간의 소득 분배 개선 몫이 더해지는 패턴을 보여왔다. 지난해에는 성장률과 물가, 취업자 변동이 주된 변수였지만 올해에는 임금 인상률 전망치 또는 100인 이상 사업장의 협약임금 인상률을 기준으로 쓸 수도 있다.
어떤 길로 가든 공익위원들이 명확한 기준을 갖고 노사와 정부를 설득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새 정부도 문 정부의 잘못을 시정하는 가장 빠른 길은 최저임금 결정에서 손을 떼고 최저임금위원회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