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월급 올랐는데 텅 빈 지갑…고임금發 인플레 공포

■고물가에 "임금 올려달라" 요청 봇물

임금發 인플레, 미·유럽 거쳐 韓 상륙…기업 고용·투자 타격

한은 "하반기 임금인상 압력 본격화" 2차 고물가 파고 예고

JP모건 "韓, 금리 4번 더 올릴것"…경기침체 우려 갈수록 커져


"올해요? 이미 8% 남짓 올렸습니다. 예년만 해도 (임금 인상률이) 물가 상승률 정도였는데 (올해는) 두 배가량 올린 셈이네요. 경쟁사들이 이미 다락같이 임금을 인상하는 상황이라 별수 없습니다. 경영 환경이 불확실한 판에 기업의 투자와 고용 여력이 더 줄어들고 있는 게 사실이에요.”








4일 만난 4대 그룹 임원의 발언은 임금 인상이 이미 국내 물가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시사한다. 시장에서는 임금발(發) 인플레이션이 미국과 유럽을 거쳐 국내로 상륙했다는 분석마저 나온다. 1차 인플레이션이 장기화되고 있는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원자재 가격 인상에 따른 것이었다면 2차 파고는 금융위기 이후 13년 6개월 만에 최대치로 치솟은 물가를 따라잡고 인재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인 임금 상승에 기인할 것이라는 진단인 셈이다. 가뜩이나 원가 상승으로 힘겨운 기업으로서는 어려운 지경에 내몰릴 수 있다. 미국의 초긴축에 따른 한미 금리 역전을 막아야 하는 통화 당국도 금리 인상에 나설 가능성이 커 스태그플레이션이 눈앞에 닥쳤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10일 출범을 앞둔 윤석열 정부가 물가 잡기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4.8% 상승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로 원자재 가격 상승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거리 두기 해제에 따른 수요 회복이 맞물려 석유·가공식품 등 물가가 전방위적으로 올랐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 물가가 더 오를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4월 기대인플레이션율은 3.1%로 2013년 4월(3.1%) 이후 9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다. 높은 기대인플레이션은 임금과 제품 가격 등에 반영되면서 물가를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앞으로 물가가 더 오를 것으로 예상하는 근로자는 고용주에게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고용주는 임금 인상분을 제품과 서비스 가격에 반영하면서 다시 물가 상승을 초래하는 악순환으로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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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증권은 7월께 소비자물가가 5% 안팎을 찍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최악의 경우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11월(6.8%) 이후 단 한 번도 없었던 6%대 물가를 예측하는 전문가도 나오고 있다.

이런 가파른 물가 급등세의 원인으로 임금 인상이 한 자리를 차지할 가능성이 크다. 올해 초 인력난으로 정보기술(IT) 업계에서 시작된 임금 인상 바람은 최근에는 고물가와 맞물리며 대·중견·중소기업 할 것 없이 도미노처럼 확산하고 있다.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임금 인상 움직임은 내수 활력의 모티브가 될 수도 있지만 수입 물가가 급등하는 상황에서 기업의 채산성 악화를 부추겨 ‘제품 가격 인상→물가 상승→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상→기업 및 가계 부담 증가→경기 침체’라는 최악의 사태로 비화될 공산이 농후하다. 이달 3일 공개된 ‘4월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에서도 “최근 일부 산업을 중심으로 임금 상승세가 가속화되는 모습이 관찰되고 있는 만큼 기대인플레이션율 상승을 통한 임금·물가 간 전가 효과가 시작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진단이 있었다. 실제 한은은 최근 고용 시장이 회복세를 나타내는 가운데 인플레이션도 겹치면서 올 하반기부터 임금 상승 압력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중앙은행의 고민도 커질 수밖에 없다. 실제 이날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한은이 이달을 포함해 추가로 네 차례 기준금리를 올려 연말에는 기준금리가 2.5%에 도달할 것으로 예측했다. 강삼모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가파른 금리 인상으로 기업의 이자 비용이 늘면 투자·고용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수익성이나 생산성이 개선되지 않은 기업들에까지 물가 상승을 이유로 임금 인상 압박이 가해져서는 곤란하다”며 “임금 인상에 따른 물가 상승의 악순환 고리는 경기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차기 정부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특히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추가로 유동성이 풀리게 되면 기업들의 임금 인상과 맞물려 통화 당국의 설 자리는 더욱 줄어들게 된다. 성 교수는 “기대인플레이션을 안정시키려면 대규모 추가경정예산과 같은 재정 확대 정책은 지양해야 하는데 상황은 거꾸로 움직이고 있다”고 꼬집었다.

김현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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