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튬 국유화에 나선 멕시코가 칠레·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리튬 생산국들과 ‘리튬 연합’ 결성을 추진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 원자재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가운데 자원 보유국들 사이에서 불고 있는 ‘자원 민족주의’ 바람이 전 세계 원자재 공급망에 더욱 큰 타격을 줄 것으로 우려된다.
3일(현지 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최근 볼리비아·아르헨티나·칠레 정상들과 리튬 연합체 결성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볼리비아·아르헨티나·칠레는 전 세계 리튬의 56%가 매장돼 있어 ‘리튬 삼각지대’로 불리는 국가들이다. 멕시코 역시 아직 생산을 개시하지 않았지만 북부 지역에 170만 톤(세계 9위 수준)의 리튬이 묻힌 것으로 알려졌다. 연일 가격이 치솟는 리튬 보유·생산국들이 손잡고 자원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키워 이익을 극대화하겠다는 구상인 셈이다. 앞서 멕시코 상원은 지난달 리튬 탐사와 채굴을 정부에서 독점하도록 하는 내용의 광업법을 통과시켰으며 3월에 취임한 가브리엘 보리치 칠레 대통령도 선거 과정에서 리튬 생산을 위한 국영기업 설립 공약을 내걸었다.
백색 황금’ ‘하얀 석유’로 불리는 리튬은 전기자동차와 스마트폰 배터리의 핵심 소재로 수요가 폭증하며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블룸버그의 리튬가격지수는 2020년 12월 121.47에서 지난달 1061.61로 약 8.7배나 뛰어올랐다. 국제 신용 평가사 피치는 지난해 말 내놓은 보고서에서 “코로나19 이후 경제적 어려움이 커지고 사회적 불평등이 강화되며 자원 보유국에서 (가격이 급등하는) 광물 분야에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리튬뿐이 아니다. ‘원자재 수출국 탈피’를 선언한 인도네시아는 2020년 1월 니켈 원광 수출을 중단한 데 이어 내년까지 보크사이트(알루미늄 원료)·구리·금 등 광물 수출을 금지할 계획이다. 아프리카 최대 구리·코발트 생산국인 콩고는 2018년 채굴 업체에 대한 세금 인상을 단행했다.
자원투자자문그룹인 크리티컬리소스의 대니얼 리트빈 대표는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문에서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정부 부채 증가, 원자재 가격 상승, 환경보호 의식 강화 등의 요인은 (자원 보유국 내) 정치인들이 해외 자원 기업을 상대로 더 많은 세금과 규제를 부과하도록 하는 동력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번 리튬 연합 결성 움직임은 자원 무기화가 개별 국가 차원을 넘어 특정 자원 보유국들 간의 '블록화’로 이어져 시장에 대한 파급력을 더욱 키우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전 세계 리튬 매장량 1위(볼리비아), 2위(아르헨티나), 3위(칠레), 9위(멕시코) 국가들의 연합체가 탄생할 경우 글로벌 원유 시장을 쥐락펴락 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처럼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원 권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자국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자원 민족주의는 세계 원자재 공급망을 흔드는 것은 물론 실제 자원 보유국 경제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자원 개발 산업을 자원 보유국 혼자 운영하는 데는 한계가 있고 해외 기업들의 투자도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우려는 특히 최근 리튬 국유화법을 통과시킨 멕시코를 중심으로 제기되는 모양새다. 켄 살라자르 멕시코 주재 미국 대사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멕시코의 정책은) 영향을 받은 기업들의 끝없는 소송을 초래할 수 있음은 물론 미국 기업들의 멕시코 투자도 축소시킬 것”이라고 꼬집었다. 멕시코 광산기술자·지질학자협회도 최근 성명에서 “멕시코에 매장된 리튬은 점토가 함유돼 있는데 우리가 아는 한 어떤 국가도 점토가 포함된 리튬을 상업화하는 데 성공한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