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노동·재정개혁 밀어붙인 메르켈의 강단…獨 '유럽의 병자'서 최강국으로

[위기의 대한민국 리더십으로 넘어라]

<하> 성공한 리더의 조건-메르켈에 배워라

경기 침체·불리한 정치입지 속 취임

근로시간계좌제 등 노동유연성 높여

실업률 11→3.2% '고용 기적' 일궈

재정준칙 강화·증세로 국고도 지켜내

'EU는 하나' 원칙외교로 국민 설득

남유럽 재정위기·코로나19 등 극복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 로이터연합뉴스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 로이터연합뉴스




“사회를 위해 옳은 일을 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의 퇴임 직전인 지난해 9월 주요 16개국 시민들은 메르켈 전 총리를 이렇게 평가하며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지도자’로 꼽았다. 퇴임 직전 독일 내 지지율은 75%에 달했다. 2005년 말부터 16년간 집권하며 남유럽 재정위기, 시리아 난민 사태, 코로나19 등 위기를 숱하게 겪었지만 임기 말까지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것이다.

메르켈 전 총리가 처음부터 이런 신뢰를 받은 것은 아니다. 메르켈 전 총리가 정권을 잡은 것은 2005년 총선인데, 단 1%포인트 차이로 승리했다. 취임 초 경제 상황도 안 좋았다. 1990년 동서독 통일 이후 경기 침체에 빠져들었고 실업률은 11%로 치솟았다. 독일이 ‘유럽의 병자’로 불리던 때다. 정치적 입지는 불안한 상황에서 뭐 하나 기댈 언덕이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도 암울하기는 메르켈 전 총리와 비슷하다. 0.7%포인트 차의 승리로 집권, 치솟는 물가, 떨어지는 잠재성장률 등이 그렇다.

2018년 6월 앙겔라 메르켈 당시 독일 총리가 캐나다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도중 손으로 탁자를 짚은 채 팔짱을 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오른쪽 아래)을 바라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2018년 6월 앙겔라 메르켈 당시 독일 총리가 캐나다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도중 손으로 탁자를 짚은 채 팔짱을 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오른쪽 아래)을 바라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메르켈 전 총리가 취임 초 불리했던 정세를 뒤집을 수 있었던 것은 혹독한 경제 개혁으로 경제 체질을 개선하고 결국 경제 발전을 이뤄냈기 때문이다. 메르켈 전 총리의 직전 총리였던 게르하르트 슈뢰더 집권기(1998~2005년) 독일의 평균 성장률과 실업률은 각각 1.2%와 9.3%로 유로존(2.1%, 9.1%) 경제보다 뒤처졌다. 동서독 통일에 따른 침체가 장기화할 조짐이 뚜렷했다.

이때 메르켈 전 총리는 ‘노동 개혁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메르켈 전 총리는 취임 직후 해고제한법 적용 제외 사업장 기준을 10인에서 20인 이하로 변경해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였다. 특히 우리나라의 탄력근로제와 비슷한 ‘근로시간계좌제’를 도입했다. 업무량이 많은 시기에 근로시간을 초과하면 업무량이 적은 시기에 휴가나 연차 등으로 소진할 수 있도록 근로시간의 탄력성을 높인 것이다.



노동자 파견 관련 규제도 완화했다. 파견 근로 기간을 상한 2년으로 정해둔 것을 철폐한 게 대표적이다. 그 결과 2003년 32만 7000명이던 파견 근로자 수는 2018년 100만 1000명으로 3배 넘게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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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켈(왼쪽) 전 독일 총리와 슈뢰더(오른쪽) 전 독일 총리메르켈(왼쪽) 전 독일 총리와 슈뢰더(오른쪽) 전 독일 총리


기업의 인력 운용 효율성이 높아지자 일자리가 늘어났고, 그 결과 2005년 11%이던 실업률은 2019년 3.2%까지 내려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독일이 고용에서 기적을 이뤄냈다”고 평가할 정도. 한국경제연구원은 “노동시장이 유연화돼 많은 사람들은 더 폭넓게 취업의 기회를 보장 받게 됐다”고 했다.

재정 건전성도 높였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2006년 66.9%에서 2009년 73.2%로 급격히 불자 2009년 헌법을 개정해 한층 엄격한 재정준칙을 도입한 것이다. 연방정부 재정적자를 GDP의 0.35% 이내로, 주정부는 0%로 제한하도록 했고, 그 결과 독일은 2019년 정부부채 비율을 2011년보다 20%포인트 줄이는 데 성공했다.

이는 엄격한 지출 구조 조정은 물론 세수 확보를 위한 증세에도 나섰기에 가능했다. 재정적자 해소를 약속했던 메르켈 전 총리는 취임 직후 부가가치세율을 16%에서 19%로 인상했다. 금융위기 재발시 긴급 지원에 재원으로 쓸 은행세와 항공 탑승 승객에게 부과하는 항공세를 2011년에 도입했다. 세수 확보를 위해 신규 세목을 신설한 것이다.

현금 복지 공약을 고수하는 것은 물론 자생력 없는 지방 공항 신설 등 포퓰리즘 공약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윤 당선인 측에서는 곱씹어야 할 대목이 적지 않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혹독한 개혁은 인기 없는 정책이지만 고령화·저출산 등으로 점점 떨어지는 경제 활력을 고려하면 국민의 이해를 반드시 구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앙겔라 메르켈(가운데) 당시 독일 총리가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서 샤를 미셸(왼쪽)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에마뉘엘 마크롱(오른쪽) 프랑스 대통령 등에게 둘러싸여 웃음 짓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지난해 10월 앙겔라 메르켈(가운데) 당시 독일 총리가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서 샤를 미셸(왼쪽)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에마뉘엘 마크롱(오른쪽) 프랑스 대통령 등에게 둘러싸여 웃음 짓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원칙에 기반한 외교정책도 메르켈 전 총리가 전 세계적인 지지를 얻을 수 있었던 비법이다. 메르켈 전 총리는 ‘유럽연합(EU)은 하나’라는 원칙으로 대(對)EU 정책을 펼쳐 나갔다. 그리스 재정위기 당시 메르켈 전 총리는 그리스에 구제금융을 지원하는 대가로 구조 개혁 및 긴축 정책을 요구했다. 당시 독일 내에서는 방만 지출로 위기에 처한 그리스를 왜 도와줘야 하느냐는 반발 여론이 있었지만 메르켈 전 총리는 “유로화가 실패하면 유럽도 실패한다”고 말하며 국민 설득에 나섰고 위기를 원만히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집권 중 최대 위기로 꼽혔던 코로나19 대유행 당시에도 메르켈 전 총리는 대규모 예산 편성에 반대하는 EU 정상들을 만나 일일이 설득, 7500억 유로에 달하는 코로나19 경제회복기금을 마련해냈다. 김동욱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미중 갈등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까지 대외 불확실성이 커진 지금 외교정책에서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며 “국제 질서 대혼돈기에 원칙 없이 임기응변적으로 대응하면 국가가 큰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곽윤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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