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한국영화계 큰 별 지다… 한국 최초의 '월드스타' 강수연 별세

뇌출혈로 쓰러진 지 사흘 만에 세상 떠나… "갑작스러운 비보 안타까워"

'씨받이' '아제 아제 바라아제' '경마장 가는길' 등 숱한 대표작 남겨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등 한국영화계 위해서도 적극 팔 걷어붙여

8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배우 고(故) 강수연의 빈소 모습. 사진 제공=故 강수연 배우 장례위원회8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배우 고(故) 강수연의 빈소 모습. 사진 제공=故 강수연 배우 장례위원회




“한국영화 그 자체였던 분입니다.”



한국영화를 처음 세계무대에 각인시킨 배우 강수연이 지난 7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55세. 그의 마지막 작품인 넷플릭스 영화 ‘정이’의 연상호 감독은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올린 추모의 글에서 그를 가리켜 이같이 기억했다. 그는 이제 한국은 물론 동아시아 배우 최초 수상으로 그에게 ‘월드스타’라는 별명을 안긴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비롯한 총 10개의 국내외 영화제 수상과 40여편의 출연작이란 기록으로 남게 됐다.

강수연은 지난 5일 오후 서울 압구정동 자택에서 뇌출혈 증세로 쓰러진 후 심정지 상태로 병원으로 옮겨져 의식불명 상태에서 치료를 받다가 7일 세상을 떠났다.

강수연은 ‘씨받이’와 ‘아제아제 바라아제’로 잇따라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타며 ‘월드스타’란 별명을 얻는다. 사진은 1989년 7월 모스크바 국제영화제에 참가했던 대표단 귀국 모습. 왼쪽부터 임권택 감독, 강수연, 김동호 당시 영화진흥공사 사장. 연합뉴스강수연은 ‘씨받이’와 ‘아제아제 바라아제’로 잇따라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타며 ‘월드스타’란 별명을 얻는다. 사진은 1989년 7월 모스크바 국제영화제에 참가했던 대표단 귀국 모습. 왼쪽부터 임권택 감독, 강수연, 김동호 당시 영화진흥공사 사장. 연합뉴스



한국 나이 네 살부터 아역배우로 연기활동을 시작한 강수연은 고등학생 시절 출연한 KBS 드라마 ‘고교생일기’로 당대 최고의 하이틴 스타에 등극한다. 이후 1987년 청춘멜로물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의 흥행 성공과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의 대종상 여우주연상 수상, ‘씨받이’로 한국은 물론 동아시아 최초로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연기 인생에 큰 전환점을 맞는다. 임 감독과 다시 뭉쳐 비구니를 연기한 ‘아제 아제 바라아제’(1989)로 모스크바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이후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1989), ‘경마장 가는 길’(1991), ‘베를린 리포트’(1991) 등을 잇따라 성공시킨다. 1992년엔 영화 ‘그대 안의 블루’에서 2억원의 출연료로 여성 연예인 중 최초로 억대 개런티 기록을 세운다. 이 영화는 일과 결혼 사이 갈등하는 전문직 여성의 이야기를 통해 페미니즘 코드를 담으며 흥행에도 성공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영화 세대교체 속에 인기는 주춤했지만, 2000년대 들어 SBS 드라마 ‘여인천하’(2001)로 건재함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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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국영화계를 위해서도 적극 나선 여장부였다. 무명 배우, 스태프에게 자주 술을 사며 “우리 영화인이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는 말은 그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고인은 1990년대 중후반 미국의 통상압력에 맞서 한국영화를 지키기 위해 스크린쿼터 수호천사단 활동도 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다큐멘터리 ‘다이빙벨’의 상영을 둘러싼 논란과 부산시의 외압 속에 표류했던 가장 어려운 시기인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영화제가 망가지는 걸 보고 있을 수 없다며 공동집행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강수연이 지난 2015년 7월 부산국제영화제(BIFF) 공동 집행위원장에 선임된 후 임시총회가 열린 부산시청 대회의실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강수연이 지난 2015년 7월 부산국제영화제(BIFF) 공동 집행위원장에 선임된 후 임시총회가 열린 부산시청 대회의실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강수연은 인터뷰에서 꿈에 대해 질문을 받을 때마다 “연기 잘하는 할머니 여배우가 되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실제로 영화 ‘정이’에 주연으로 캐스팅돼 9년만의 복귀를 앞두고 있었다. 이미 촬영이 마무리된 후 후반작업 중인 이 작품은 강수연의 유작이 됐고, 할머니 여배우가 되고 싶다던 꿈은 결국 지킬 수 없는 약속이 됐다.

별세 이틀째인 8일 빈소가 차려진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는 이른 시간부터 조문객이 몰렸다. 고인과 각별한 인연으로 장례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현 강릉국제영화제 이사장)은 “너무 갑작스러운 비보라서 안타깝고 애석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영화계의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고인에 대해 “영화계 최초의 월드스타로서 전 세계에 한국을 알리는 역할을 했고, 부산국제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으면서 영화계와 한국 영화산업에도 크게 기여한 사람”이라고 회고했다.

그의 장례는 영화인장(葬)으로 치러진다. 영결식은 오는 11일 오전 10시에 열리며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할 예정이다.


박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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