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공공택지의 주택 공급을 공공에 맡기는 ‘주택공영개발지구’제도를 되살리겠다는 법안에 사실상 반대한 것으로 확인됐다. 시장 수요가 높은 민간 공급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해당 제도는 민간에 힘을 싣기로 한 새 정부의 정책 기조와 상반된 목적을 내세우고 있는 만큼 법안 논의 과정에서 여야 간 갈등이 불거질 것으로 전망된다.
10일 부동산 업계 등에 따르면 국회는 주택공영개발지구 도입 등을 담은 ‘주택법 개정안’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지만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6개월 넘게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심의 안건으로 오르지 못한 채 계류 중이다.
개정안은 투기과열지구 내 공공택지 중에서 투기 우려가 있거나 주택 공급의 공공성 강화가 필요한 경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주택공영개발지구로 지정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이를 기반으로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기관은 공공택지를 양도 받아 직접 주택 건설 사업을 시행하고 개발이익을 환수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논란이 된 대장동 개발 사업처럼 민간 업체가 공공택지 개발을 통해 과도한 이익 취하는 상황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주무 부처인 국토부는 개정안에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국토부는 국회에 제출한 개정안 검토 보고서에서 “원활한 주택 공급을 위해서는 민간 참여도 필요한 만큼 주택공영개발지구의 재도입은 신중히 해야 한다”며 난색을 표했다. 시행 중인 공공택지 분양가상한제에 더해 이번 규제까지 추가되면 민간 공급이 급격하게 축소될 수 있다는 현실적인 우려 때문으로 풀이된다.
주택공영개발지구 적용 대상인 투기과열지구는 현재 전국 49곳에 달한다. 서울 25개 자치구와 경기 과천·광명·하남·수원시 등 수도권뿐만 아니라 대구 수성구, 세종시 등 전국 주요 지역이 규제에 직격타를 맞는다. 이들 지역은 교통·교육 인프라 등이 잘 갖춰져 있어 주거 수요도 높다. 따라서 민간을 완전히 배제한 공공 공급만으로는 국민들이 원하는 물량만큼 주택을 짓기가 쉽지 않다. 여기에 주택공영개발지구제도가 시행되더라도 LH 등 사업자의 재무 여건 탓에 주택 공급이 계획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주택공영개발지구 도입이 새 정부 출범과 맞물려 ‘없던 일’로 될 거라 점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규제 완화를 기반으로 민간 공급을 활성화해 궁극적으로 부동산 시장의 안정화를 꾀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이 제도가 2005년 노무현 정부에서 도입됐다가 2015년 박근혜 정부 때 규제 정상화를 이유로 폐지된 적이 있다는 점도 이 전망에 힘을 더한다. 서진형 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경인여대 교수)는 “민영주택에 대한 시장 수요가 여전히 높은 상황에서 공공주택 공급을 늘리면 수급 불균형만 심해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공급은 민간에 맡기고 공공은 주거 취약 계층을 위한 영구 임대 조성 등 주거 복지 실현에 무게를 둬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