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인위적 임금 인상, 韓 경제 복병 될 수도

■김대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무분별한 임금 인상과 투자 위축의 역효과

인위적 임금인상과 영국병의 그림자

김대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김대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미국이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5월 4일 기준금리를 0.5%포인트로 큰 폭 인상한 데 이어 앞으로 수차례의 추가 빅스텝을 예고했다. 우리도 금리 인상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는 가운데 가계부채에 대한 부담과 경기둔화 우려를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최근 물가 상승이 그간의 양적 완화의 결과일 뿐 아니라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을 반영한 코스트푸시 인플레이션이라는 점도 수출입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 상당한 위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생산 비용이 오르는 만큼 기업의 채산성은 악화하고 고용도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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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통계에 따르면 최근 취업자가 늘었지만 이는 단시간 근로 증가에 따른 통계적 착시일 뿐 본격적인 경기 회복세의 신호탄과는 거리가 멀다. 경기가 회복되면 전체 노동시간 투입이 증가하는데 실제로는 취업자 수만 늘었을 뿐 노동시간 투입은 아직도 정체된 상황이다. 취업자 숫자만 반영하는 정부 통계 고용률은 팬데믹 이전인 2019년 3월에 비해 올 3월 1.0%포인트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근로자들이 일한 시간까지 반영한 전일제 환산 고용률은 오히려 2.7%포인트 하락했다. 더욱이 최저임금이 대폭 인상되기 전인 2017년 3월과 비교하면 전일제 환산 고용률은 무려 5.7%포인트나 떨어졌다. 즉 우리 고용 상황은 미국과 같은 과감한 금리 인상을 받쳐줄 만큼 탄탄하지 못한 것이다.

여기에 임금 인상 압박까지 가세하면 상황은 더 악화할 수 있다. 시장 수요에 따른 자연스러운 임금 상승과 달리 대기업 노조가 인위적으로 주도하는 임금 인상은 아직 제대로 시작도 못한 경기 회복에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성과가 높은 기업들이 투자와 고용을 늘리려 할 때 실업률이 낮고 인력이 부족하면 시장 원리에 의해 임금이 상승할 수도 있다. 그러나 노조의 임금 인상은 필연적으로 이 수준을 넘어서기 때문에 그 결과 기업의 투자와 채용은 오히려 위축되는 역효과를 유발한다. 대기업 노조 근로자의 임금은 크게 오르겠지만 중소 하청 업체의 부담은 증가하고 청년층 구직자에게 제공돼야 할 일자리는 사라지기 때문에 경제와 근로자 전체로 보면 오히려 손해다. 게다가 원자재 가격 상승에 과도한 인건비 부담까지 추가되면 단순히 경기 회복이 지연되는 수준을 넘어 스태그플레이션이 현실화할 수도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노조와 정부의 전후합의(Post-War Consensus)가 임금 인상과 물가 상승의 악순환을 초래하고 결국 영국병으로 이어졌던 경험이 우리나라에서도 그대로 재연될 조짐을 보이는 것이다.

코스트푸시 인플레이션과 경기둔화라는 난제를 헤쳐가려면 생산성 제고와 비용 절감 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 투자와 기술 개발이 필요하고 이에 소요되는 자금 확보를 위해 시장원리에서 벗어나는 인위적인 임금 인상은 최대한 자제돼야 한다. 정부는 기업들이 어려운 현실을 버텨내고 투자도 할 수 있도록 기업을 옥죄는 불필요한 규제를 철폐하고 법인세를 인하하는 한편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제고하고 노사 관계의 기울어진 운동장도 바로잡아야 한다. 어려운 여건을 버텨내는 기업이 많을수록 경기가 개선될 때 고용이 탄력적으로 증가할 수 있지만 버틸 수 있는 기업들까지도 퇴출되는 경직적 구조에서는 경기 회복도 어렵고 고용 회복은 더 어렵다.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결국 기업이기 때문에 기업을 옥죄는 규제와 세금, 그리고 불합리한 노사 관계는 그만큼 근로자와 국가 경제를 옥죄는 요소임을 새 정부는 잘 헤아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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