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 연차가 쌓일수록 아쉬워지는 것 중 하나가 ‘동친(동네친구)’ 같아요. 시간도 체력도 모자라서 20대 초중반 때처럼 베프들 척척 모이기가 쉽지 않거든요. 슬리퍼 찍찍 끌고 나가서 동친이랑 맥주 한 잔만 하고 싶을 때도 있는데...
그런 아쉬움을 품고 산 지 백오십년. 이거다! 싶은 모임을 최근에 발견했어요. 쓰레기도 줍고, 비건·환경 독서 모임도 하는 쓰줍인(인스타). 전국 곳곳에 모임이 있다는 점도 넘나 매력적이죠. 우리 동네 산책할 겸 쓰줍 하고, 지구용사들끼리 맥주 한잔...아니 진지한 대화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기에 가면 생각이 비슷한 친구들이 분명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쓰줍인을 시작한 사람, 부산의 비키님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어요.
반려견을 위해 시작한 쓰줍
비키님은 “반려견 ‘감자’와 산책을 하면서 길에 쓰레기가 그렇게 많은지 처음 알게 됐다”고 하더라구요. 감자가 길을 가다 눈에 보이는 게 있으면 왕 물고는 잘 놓지 않는 습관이 있거든요. 그렇다면 감자가 물기 전에 쓰레기를 줍자! 하고 쓰줍에 눈을 뜨게 된 거예요. 마침 동네 지인분도 종종 쓰레기를 줍는다고 하셔서, “그럼 사람들을 모아서 같이 쓰줍해보자”고 한 게 쓰줍인의 시작이었대요. 현재 쓰줍인 인스타의 팔로워수는 2700명이 넘어요.
쓰줍인이 만들어졌을 때가 2020년 11월,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었을 때다 보니 처음에는 전국 곳곳에서 각자 쓰레기를 줍고 인증하는 온라인 모임이었어요. 그러다 2021년 봄쯤엔 서울, 부산, 제주에서 오프라인 모임이 진행됐고 서울·인천·경기도 남양주·부산·경남 양산과 진주·경북 구미까지 범위가 넓어졌어요. 오프라인 쓰줍 모임은 한 달에 한 번(신청은 여기) 열려요.
쓰줍과 별도의 온오프라인 책 모임, 스터디도 하고 있어요. 주제는 환경과 비거니즘. “매주 열리는 스터디, 한 달에 한 번 책을 읽고 만나는 책 모임에서 생각을 나누면서 서로서로 동기부여가 되는 것 같아요. 배움과 행동을 실천하면서 그 효과가 배가 되기도 하고요. 그렇게 함께 성장하는 게 쓰줍인의 장점이자 매력이에요”라는 비키님의 말씀. “매주 모임이 부담스럽다면 독서 모임을, 더 자주 만나고 깊게 공부하고 싶다면 스터디를 선택하시는 것 같다”는 팁도 주셨어요.
쓰줍을 바라보는 시선들
혼자 쓰줍은 조금 쑥스럽지만, 함께라면 얘기가 다르죠. 비키님은 “한 번도 쓰줍해본 적 없는 분들도 오프라인 모임에서 용기를 얻어 ‘혼쓰줍’할 능력치를 쌓게 된다”고 설명하셨어요. 그리고 오프라인 쓰줍 끝나고 밥 먹고 차 마시면서 이야기 나누는 시간도 너무 좋구요.
비키님은 “오프라인 쓰줍 모임은 힐링되는 시간”이래요.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과 함께라는 사실만으로요. 지역에서 오프라인 모임을 하다 동네 친구가 되기도 하구요.
쓰줍할 때 행인들의 반응도 물어봤는데요. ‘좋은 일 하시네요’란 격려가 많대요. 그리고 곧바로 영향을 받는 분들도 계시구요. 예를 들어 묵묵히 쓰줍중일 뿐인데 “여기에 안 버릴 거예요!”라며 피우던 담배 꽁초를 챙겨가는 분, 길에 버리려던 쓰레기를 갑자기 움켜쥐고 허겁지겁 사라지는 분...그리고 비키님이 열심히 쓰줍 중인 걸 보고는 따라서 줍줍한 쓰레기를 건네주신 분(즉석 쓰줍이라 그 분은 봉투가 없는 상황)도 계셨대요.
우리가 100번쯤 “쓰레기 줍자”고 외쳐도 사람들은 잘 변하지 않겠죠. 하지만 그냥 조용히 쓰레기를 줍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면 더 강력한 효과가 있는 거구나 싶었어요.
버려진 꽁초 없는 세상
쓰줍 하시는 분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씀이 있어요. “담배 꽁초가 너무너무너무X100000 많다”는 말씀요. 비키님과 쓰줍인들도 그 심각성을 깨닫고 문제 해결에 나섰어요. 꽁초를 돌돌 싸서 담뱃갑이나 주머니에 넣을 수 있는 시가랩(인스타)을 개발한 회사랑 손잡고 캠페인도 하고요. 그런데 흡연자들의 각성(!)도 중요하지만, 정부와 기업의 참여가 더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대요.
그래서 담배 회사 KT&G 앞에서 기자회견도 하고 여러가지를 요구했어요. 그 중 하나는 생분해 담배 필터라도 써 달라는 것. KT&G의 답변은 “상용화된 대체재가 없다”였는데 좀 어이없는 게, 해외 담배 회사들은 이미 쓰고 있거든요. 유럽연합(EU)은 플라스틱 필터를 법으로 규제중(2025년까지 절반, 2030년에는 80%까지 줄여야 함)이구요.
그리고 또 다른 요구는 담배 제조사가 나서서 담배 꽁초 전용 수거함을 설치해달란 거였어요. 최소한 흡연자들이 “쓰레기통이 없어서 그냥 길에 버렸다”는 변명은 못 하게요. 다행히 요건 꽤 진전이 있어요(전국에 수거함이랑 흡연실 설치하는 KT&G). 하지만 “조 단위로 영업이익을 내는 회사인데 겨우 몇천만원 쓰면서 찔끔찔끔 설치하는 건 너무 적지 않느냐”는 게 쓰줍인들의 지적이에요. 실제로 길을 걸으며 봐도 흡연 스팟(...)은 엄청 많은데 수거함은 잘 안 보이긴 해요.
비키님은 쓰줍인들과 앞으로도 함께 하면서 쓰줍하고, 공부하고, 목소리를 낼 계획이에요. “길에 버려지는 1순위 쓰레기인 담배꽁초 만큼은 해결하고 싶고, 가능하다면 길에서 주울 쓰레기가 없어져서 쓰줍인이 필요 없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고. 용사님들도 많이많이 응원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