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중기·벤처

[서경이 만난 사람] 최진식 회장 "중견기업 보증한도 25년째 30억…최소 300억으로 늘려야"

[서경이 만난 사람] 최진식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회장

대담=홍병문 성장기업부장

자금 물꼬 트면 투자 늘어 경제 선순환…우선보증도 20% 이상 할당을

기업수 5526개·전체 고용의 14%…산업정책 중견기업 역할 중시해야

OECD 평균보다 높은 상속세율 낮추고 가업상속공제 한도 확대 필요

최진식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회장 /성형주 기자최진식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회장 /성형주 기자




“우리의 법과 제도는 대기업은 규제 대상, 중소기업은 지원 대상으로 바라보는 이분법적 인식이 고착화돼 있습니다. 중간에 낀 중견기업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역차별을 받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중견기업이 되면 70여 개의 지원이 끊기고 100여 개의 새로운 규제를 받는 지경인데,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중견기업은 더욱 심각한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3월 말 경제6단체 중 하나이자 국내 중견기업계를 대표하는 법정 경제 단체인 한국중견기업연합회의 새 수장으로 취임한 최진식 회장은 인터뷰 시작부터 쓴소리를 쏟아냈다. 중견기업을 죽이는 규제와 역차별적 기업 환경을 더 이상 두고 보기 힘들다고 했다. 특히 위기에 놓인 중견기업을 외면하는 시중은행들의 영업 행태를 꼬집었다. 경제성장의 밑거름인 기업 활동을 지원할 기업대출은 외면한 채 손쉬운 돈벌이인 주택담보대출 같은 이자 장사에 집중하는 데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최 회장은 “(국내외 경제 환경이 좋지 않은 데다)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쳐 자금 흐름에 문제가 생긴 상황에서 금융기관은 기업대출을 신용으로 해줄 생각조차 하지 않고, 신용보증기금·기술보증기금 등의 기업당 최고 보증 한도는 1997년 이후 25년간 30억 원에 묶여 실효성이 떨어진다”며 “정부가 보증을 늘려주면 그만큼 투자 여력이 확대되고 경제의 선순환도 일어나는데 왜 이런 규제를 그대로 두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개별 중견기업 최고경영자(CEO)에서 730여 곳의 회원사를 둔 중견기업 대표 단체 수장으로서 어깨가 무거워진 최 회장을 15일 서울 여의도 SIMPAC홀딩스 서울사무소에서 만나 앞으로 중견련을 어떻게 이끌어나갈지 구상을 들어봤다.

최진식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회장 /성형주 기자최진식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회장 /성형주 기자


최 회장은 중견기업을 옥죄는 가장 큰 걸림돌로 자금 조달 규제를 꼽았다. 중견기업 보증 확대는 중견기업계의 숙원 과제 중 하나다. 1997년 15억 원에서 30억 원으로 상향된 후 지금까지 25년간 보증 한도는 그대로다. 사업 재편 및 인수합병(M&A) 등을 통한 신사업 진출과 지속적인 연구개발(R&D), 설비투자를 위해 대규모 자금 조달이 필수적인데 현재의 신용보증 제도는 중견기업이 활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최 회장은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한도를 30억 원에서 우선적으로 최소 300억 원 규모로 늘리고 기업의 실제 수요를 점검해 지속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우선보증’ 대상 범위에 대해서도 “코로나19 같은 국가적 재난으로 일시적 매출이 감소한 탓에 신용 등급이 하락하고 여신 한도가 축소된 초기 중견기업이 유동성 문제를 겪고 있으므로 이들의 지속적 성장을 위해 최소 20% 이상이 중견기업에 할당되도록 우선보증 대상을 확대하는 방안을 시급히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소기업보다는 덩치도 크고 안정적인 중견기업을 지원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최 회장은 ‘중견기업 경제 허리 역할론’을 내놓았다.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길목에서 우리 경제의 중간 허리 역할을 하는 중견기업의 사기와 경쟁력을 진작해야 한국 경제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다는 논리다. 최 회장은 “중견기업은 대기업에 버금가는 좋은 일자리의 산실로 청년 실업 해소의 주역이자 실질적으로 내수를 지탱하게 하는 국가 위기 극복의 든든한 버팀목”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중견기업 성장 촉진 및 경쟁력 강화에 관한 특별법이 2013년 시행된 후 중견기업 수는 첫해 3846개사에서 2020년 5526개사로, 고용은 116만 1000명에서 157만 8000명으로 늘어 전체 고용의 13.8%를 차지하고 있다. 2020년 신규 채용 중 청년 비중은 65%에 달한다. 수출도 876억 달러에서 933억 달러로 증가했다. 그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중견기업을 육성하면 국가와 지역 경제 리스크를 크게 줄이는 동시에 국가 경제를 지탱하는 일꾼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따라서 산업 정책을 중견기업 위주로 전환할 시점이 됐다고 최 회장은 역설했다. 우리 경제의 저력을 키울 근간을 새롭게 구축할 시대적 유인이 발생한 만큼 새 정부가 중견기업의 혁신 성장 육성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요구하기도 했다. 그는 중견기업 성장론에 대해 “코로나19로 인한 공급망 붕괴와 일본의 수출 규제에 따른 무역 분쟁 등 갖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오랜 기간 쌓아온 경영 노하우와 기술 경쟁력을 토대로 분야별 세계 1등 혹은 굴지의 강자로서 입지를 공고히 하며 국가의 경제성장을 견인한 ‘히든 챔피언’의 역할을 수행했다”고 평가했다. 최 회장이 취임 후 첫 프로젝트로 ‘중견기업 혁신 성장 정책 포럼’을 출범시킨 것은 이 같은 평가의 연장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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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회장은 “중견기업을 단순히 규모의 관점에서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사이’로서 공간적으로 구획하는 것이 아닌 국내 산업 발전의 주역으로서 새로운 산업 정책 패러다임의 ‘중심’에 세우는 작업이 이제는 시대적 과제로 떠올랐다”고 강조했다.

최진식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회장 /성형주 기자최진식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회장 /성형주 기자


그는 중견기업이 산업 정책의 중심으로 우뚝 서기 위해 2024년 7월 일몰될 예정인 ‘중견기업특별법’의 상시법 전환을 정부가 최우선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견기업의 최대 숙원 과제인 탓인지 최 회장은 인터뷰 내내 중견기업특별법 일몰에 따른 병폐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최 회장은 “중견기업특별법이 일몰되면 중견기업의 기준이 사라지고 중소기업과 대기업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이 부활해 중견기업들의 조세 부담은 급증하고 대기업과 동일한 수준의 규제 부담을 떠안게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성장을 거부하는 이른바 ‘피터팬증후군’을 앓는 기업이 우후죽순 늘어나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며 “중견기업법의 존속은 중견기업만의 문제가 아닌 국가 산업 전체의 문제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강조했다. 핵심 제조 분야인 소재·부품·장비 기업군의 약 85%(1675개사)를 차지하는 중견기업이 경쟁력을 상실하면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 제조업의 위상은 크게 저하될 것이 극명하다는 게 중견련의 판단이다.

이를 위해 최 회장은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새 정부 경제정책 제언’이라며 중견기업계의 의견을 전달하고 지원을 적극 호소했다. 가장 먼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국 중 27위에 머물고 있는 기업가 정신을 제고하기 위한 규제 개선을 요구했다. 그는 “OECD 평균(15%)보다 현저히 높은 상속세 최고 세율 인하와 가업상속공제 대상 및 한도 확대, 일정 기간 나눠서 내는 연부연납 시 비상장 주식 납세담보 허용 등 원활한 기술력과 경영 노하우의 승계가 이뤄질 수 있도록 기업승계 제도 전반의 개선에 착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또 “미래 산업과 신기술에 대한 R&D 세제 지원과 투자 확대를 통한 기업의 혁신 성장 지원, 노동 관련 정책 합리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 기반 조성 등도 긴요한 과제”라고 제시했다. 지난 5년간 무너진 산업 생태계를 부활시키기 위해 민간 주도의 성장 패러다임이 자리매김하는 것이 필수이고, 이를 통해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원활하게 성장할 수 있는 선순환 생태계 구축을 뒷받침하기 위해 왜곡된 법·제도를 새 정부에서 서둘러 뿌리 뽑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의 육성책도 필요하지만 중견기업의 자체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는 반성론도 거론했다. 초기 중견기업의 경우 성장 과정에서 수많은 리스크에 직면하기 때문에 선제적인 R&D와 시설 구축, 시장 개척 등을 위한 과감한 투자로 신용도가 떨어지는 불가피한 ‘비용’적 측면을 감내해야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최 회장은 다만 “이 같은 자체 노력도 단순한 정량 기준이 아닌 중견기업의 성장성과 혁신성 등 다양한 요소와 현장의 현실을 반영한 규제 개선이 반드시 병행돼야 우리 산업의 체질이 강화되는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리=이현호 기자 사진=성형주 기자

He is

△1958년 경기 고양 △동국대 무역학과 △연세대 경영학 석사 △미국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 M&A 과정 수료 △1986년 동양증권 이사 △1999년 한누리투자증권 전무이사 △2001년~ SIMPAC홀딩스 대표이사, SIMPAC 대표이사 회장 △2014년~ SIMPAC인더스트리 대표이사 회장 △2018년~ 리스텍비즈 대표이사 회장 △2022년 제11대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회장

이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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