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스테이블' 용어조차 없고 법안도 '복붙' 수준…법제화 곳곳 구멍

■루나 사태 후폭풍…알맹이 빠진 디지털자산기본법

명확한 규정 없어 대응 불가

기존 암호화폐 관련 발의안도

청년 표심 노린 이목끌기 그쳐

감독 당국은 법 없으니 '방관'

尹정부 기본법 '정교화' 시급





암호화폐 사업자 및 이용자 모두 디지털 자산 법제화를 서둘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관련 논의는 ‘루나 사태’가 터지고서야 재개되고 있다. 루나와 같은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투자 위험성이 분명히 있는데도 제대로 된 회계나 가치 평가, 감사, 시장 감시 시스템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규제 사각지대에서 투자자와 암호화폐 사업자의 탐욕이 뒤엉키며 50조 원의 자산 가치는 휴지 조각이 됐다. 빚투에 몰린 청년층의 표심을 노리며 법안들을 쏟아냈지만 정작 ‘대형 사고’를 막을 수 있는 견제 장치조차 마련되지 않았다.



◇암호화폐 법안, 스테이블코인 정의도 없어


18일 국회 정무위원회 등에 따르면 현재 발의된 7개의 디지털 자산 기본법 제정안은 물론 암호화폐 관련 내용을 담은 6개 개정안 모두 루나 사태의 원인이 됐던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명확한 정의 또는 규정이 포함돼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용어 자체가 실리지 않다 보니 스테이블코인 발행 자격, 심사 기준 등의 내용도 아예 없다.

스테이블코인은 가격 변동성을 최소화하도록 설계된 암호화폐다. 이번에 문제가 된 테라USD(UST) 역시 스테이블코인이다. 통상 1코인당 1달러의 가치를 갖도록 만들어지며 그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달러 등 법정화폐나 가상자산을 예비금으로 마련해둔다. UST의 경우 유일하게 자체 발행 가상자산으로 가격을 통제한다는 알고리즘 방식을 차용해 문제가 됐다.



루나 사태로 알고리즘의 명확한 한계가 드러났지만 시장에서는 여전히 스테이블코인이 미래 금융에 미칠 파급력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일반 암호화폐와 달리 안정성을 확보한 만큼 상용화된 교환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등 해외에서는 관련 논의가 의회 및 금융 당국 차원에서도 활발하게 논의되지만 국내에서는 학계 연구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학계 및 업계에서는 루나 사태 이전부터 현재 발의된 법안보다 업그레이드된 법안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자본시장연구원이 지난해 12월 국회 정무위원회의 요청으로 수행해 작성한 ‘국회 발의 가상자산업법의 비교분석 및 관련 쟁점의 발굴검토’ 보고서는 “미래 금융 지형에 대한 예측과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국제적 논의, 유럽연합(EU) 가상자산시장규제안(MiCA)의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발행인의 인가 규제 및 준비 자산 운용 제한 등을 참고해 국내에서도 선제적 준비 작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관련기사



해당 보고서의 연구를 수행한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법정화폐 기반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규제책도 마련해두는 것이 법적 완결성 측면에서 더 바람직할 것”이라며 “국정과제에 포함된 디지털자산기본법에 모든 게 담겨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전했다. 정석문 코빗 리서치센터장도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의 건전성 여부 등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제도, 기준들이 나와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목 끌기 법안…복사, 붙여 넣기 수준


스테이블코인뿐 아니라 암호화폐 관련 일반적인 제재 및 규정 곳곳에도 허점이 많다. 지난해 암호화페 열풍에 휩쓸려 법안들이 발의되다 보니 ‘이목 끌기’식 법안이 쏟아진 탓도 있다. 가령 암호화폐업 제·개정안 13개 중 시장 질서 교란 행위 관련 규정을 포함한 법안은 권은희 의원안과 윤창현 의원안, 김은혜 전 의원안 3개뿐이다. 특히 암호화폐 사업자가 임의로 입출금을 차단하는 조치를 금지하는 내용은 윤창현 의원안과 김은혜 전 의원안을 제외하면 아무도 언급하지 않았다. 암호화폐 사업자가 암호화폐에 관한 상품 정보를 고의·과실로 허위 공시하거나 부정하게 공시하지 못하도록 규정하는 제도와 암호화폐 사업자의 불공정거래에 관한 과태료 규정도 각각 한 개 법안에만 포함됐다.

암호화폐 업계의 한 관계자는 “사실 일부 법안들은 2018년 한 차례 암호화폐가 화두가 됐을 때 나온 법안을 재활용한 수준”이라며 “현행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에 쓰인 내용이나 전통 금융에 적용돼온 규제를 큰 고민 없이 복사, 붙여 넣기한 것들도 있어 심도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정부의 디지털자산기본법이 마련되기 전까지는 금융 당국에 아무런 대응책도 기대하기 힘들다는 점 역시 문제다. 새 정부 국정과제 중 ‘디지털 자산 인프라 및 규율 체계 구축’은 금융위원회 과제로 배정됐지만 금융위마저도 ‘가상자산 주무 부처’라고 언급되는 데 난색을 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법안에서 법 내용을 어떻게 꾸리느냐에 따라 주무 부처는 당연히 바뀔 수 있다”며 “게다가 현재 관련 법이 없으니 대응이 어려운 게 아니라 대응 자체를 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투자자들은 금융위와 금융감독원이 사실상 방관 수준의 소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17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내 루나 투자자는 28만 명이고 약 700억 개를 보유했던 것으로 추정한다”면서도 “(가상자산이) 법적으로 제도화되지 않은 만큼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별도 조치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같은 날 정은보 금융감독원장도 “현재 관계 법령 부재에 따라 감독 당국 역할은 제한적”이라고 설명했다.

조윤진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