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시각장애인이 현금을 사용할 때 액면 금액을 쉽게 식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애플리케이션(앱)을 출시했지만 사용률이 극히 저조한 것으로 드러났다. 앱이 출시된 지 한 달여가 지났음에도 사용 불편과 홍보 부족 등으로 사용률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국은행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지난해 11월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현금 식별 앱 개발에 착수해 지난달 20일 장애인의 날에 맞춰 ‘한국은행권 액면식별 도우미’ 앱을 출시했다. 하지만 22일 기준 구글 플레이스토어에 집계된 해당 앱의 다운로드 횟수는 500회 내외로 극히 저조한 것으로 드러났다. 보건복지부에 집계된 전국 시각장애인 인구가 25만 여 명에 이르는 걸 감안하면 앱 활용도가 1%도 채 안 되는 셈이다. 한국장애인소비자연합 심정섭 실장은 “시각장애인들은 주로 사용하는 폴더폰 방식의 스마트폰은 시중에 흔히 유통되는 스마트폰보다는 성능과 사양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이번에 출시된 앱은 저사양에도 무리 없이 구동되기에는 버벅거림과 구동 지연 등으로 불편함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3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에 급하게 앱이 개발되다보니 실사용자들을 위한 배려가 다소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시각장애인들은 지폐 액면가를 쉽게 식별할 수 있도록 10년이 넘게 관련 제도 개선을 촉구해왔지만 현실은 제자리걸음이었다. 지폐 모서리 부분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가 있지만 표시가 도드라지지 않았고 쉽게 닳아 없어져서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는 비판이 줄곧 제기돼왔다. 시각장애인 인권단체들은 관련 문제로 국가인권위원회에 2007년 진정도 제기했지만 기각됐다. 이후 현금 거래를 할 때 실수로 더 많은 금액을 내거나 거스름돈을 받을 때 얼마인지 모르고서 그냥 받는 등 어려움이 계속되면서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제도 개선을 촉구했고 한국은행은 이를 받아들여 앱 개발에 나섰다. 새로 출시된 앱은 스마트폰 카메라에 지폐를 대면 액면 금액을 인식해 음성과 진동으로 안내해주는 방식으로 구동된다.
이처럼 복잡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음에도 현실은 사용 불편과 홍보 부족 등의 문제로 사용률은 떨어지고 있다. 심 실장은 “현재 출시된 앱은 ‘캐시리더’라는 해외 앱과 비교하면 구동 속도와 가용성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라며 “홍보도 부족해 인권단체가 직접 나서 시각장애인들에게 알리고 있다”고 말했다. 20대 시각장애인 최 모 씨는 “이전에는 현금을 식별하기 위해서 ‘지폐 식별용 플라스틱 카드’를 따로 들고 다녀야 해 불편함이 컸다”면서 “관련 앱이 출시된 줄 알았으면 자주 사용했을 텐데 홍보가 부족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위조 지폐는 확인이 어렵고 훼손된 지폐에 대한 액면 인식이 어렵다는 점도 과제다. 30대 시각장애인 박 모 씨는 “현금 거래를 할 때면 악의를 가지고 일부러 잘못된 지폐를 주는 경우에 대한 불안감이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상품권이나 다른 지폐권에 대한 가용 범위도 넓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국은행 측은 “철저한 사후 관리를 통해 앱 이용에 불편함이 없도록 하고, 새 은행권을 발행하면 액면 식별장치도 개선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