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11 동일본 대지진 당시 우왕좌왕했던 일본 정부와 달리 일본항공(JAL)은 탁월한 위기 대응 능력을 보여줬다. JAL 경영진은 지진 당일에 비상 체제를 가동해 이튿날부터 후쿠시마 인근 지역에 임시 항공편을 투입했다. 퇴역이 임박한 항공기까지 총동원해 4개월간 피해 지역에서 20만여 명을 실어 날랐다. 부실기업으로 낙인 찍혔던 1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기민한 대응이었다.
1951년 설립돼 ‘반관반민’ 형태로 운영되던 JAL은 경제 급성장과 엔화 가치 상승세를 타고 승승장구했다. 정부는 1987년 민영화 이후에도 국민 기업을 내세워 1% 이상의 대주주 지분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낙하산 인사’가 판쳤고 방만 경영과 도덕적 해이는 도를 넘었다. 2002년 재팬에어시스템(JAS)과의 합병도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했다. 누적 적자가 2조 3200억 엔(약 29조 원)에 달하자 급기야 2010년 1월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상장도 폐지됐다.
최대 항공사의 몰락을 두고 볼 수 없었던 일본 정부는 교세라그룹 창업주인 이나모리 가즈오 명예회장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나모리 회장의 JAL에 대한 평가는 ‘경영 철학도 전략도 없는 부실 덩어리 자체’였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혹독한 구조조정에 나섰다. 직원 4만 8000명 중 1만 6000명이 떠났고, 8개에 달하던 사내 노조도 정리됐다. 회사는 2년 만에 흑자로 돌아섰고 2012년 9월 증시에 다시 상장했다. 오니시 마사루 당시 JAL 사장은 “망해보니 무엇이 중요한지 가슴으로 깨달았다”는 소회를 밝혔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이 6·1 지방선거 출구조사 결과를 본 뒤 JAL의 극적인 회생 과정을 거론하며 더불어민주당에 쓴소리를 했다. 그는 페이스북에 “JAL이 방만한 경영으로 상장폐지되고 3년간 피나는 구조조정 후 다시 상장하며 회장(오니시 사장)이 ‘망(亡)하니까 보이더라’라고 했다”고 썼다. 박 전 원장은 “당생자사(黨生自死), 당이 살고 자기가 죽어야 국민이 감동한다”고도 했다. 기업이든 정당이든 뼈를 깎는 혁신과 처절한 반성이 없으면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