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이방인으로서 동질감…그의 여정은 고무적"

◆리처드 용재 오닐 헌정곡 쓴 일본계 미국인 작곡가 폴 치하라

서울시향서 비올라 협주곡 초연

같은 亞출신 미국 이민자로서

용재 오닐에 자주 친밀감 표해

"그의 두려움 넘어선 승리 담아"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오른쪽)과 그를 향한 헌정곡인 비올라 협주곡 ‘젊은 예술가의 영웅적 초상’을 만든 일본계 미국인 작곡가 폴 치하라. 사진 제공=폴 치하라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오른쪽)과 그를 향한 헌정곡인 비올라 협주곡 ‘젊은 예술가의 영웅적 초상’을 만든 일본계 미국인 작곡가 폴 치하라. 사진 제공=폴 치하라




지난달 18·19일 서울시립교향악단 정기 공연이 열린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이 협연한 비올라 협주곡의 연주가 끝나자 한 노신사가 무대에 올랐다. 그는 마스크를 썼지만 상기된 표정을 감출 수 없었고 지휘를 맡은 오스모 벤스케 서울시향 음악감독과 협연자인 용재 오닐, 공연장을 찾은 관람객들에게 연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관객 중 일부는 용재 오닐이 부축해 자리를 뜰 때까지도 노신사가 누구인지 몰라 궁금증을 자아냈다. 하지만 그는 이 곡을 쓴 일본계 미국인 작곡가 폴 치하라(84)였다. 그는 용재 오닐에게 헌정하는 의미로 비올라 협주곡에 ‘젊은 예술가의 영웅적 초상’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이 자리는 이 곡의 세계 초연 무대였다.

치하라는 클래식 곡은 물론 100여 편의 영화와 TV 시리즈 음악을 만들었으며 뮤지컬 ‘쇼군’ 등 브로드웨이 뮤지컬 여러 편에도 음악감독으로 참여한 거장 음악가다. 그는 최근 서울경제와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서울시향과 용재 오닐의 연주가 더할 나위 없이 짜릿했다. 특히 용재 오닐은 매우 열정적 연주를 보여줬다”고 소감을 밝혔다.



용재 오닐이 2008년 치하라의 곡 ‘미니도카’를 음반으로 녹음한 이래 두 사람은 음악적으로 꾸준히 교류하는 사이다. 하지만 헌정곡까지 만들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치하라는 “용재 오닐이 오늘날 세계적으로 위대한 비올리스트 중 한 명으로 올라서기까지의 개인적 여정은 나를 비롯해 그를 아는 모든 이를 고무하고 영감을 준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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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계 미국인 작곡가 폴 치하라(오른쪽)가 지난달 19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서울시향 정기 공연에서 무대에 올라 관객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있다. 사진 제공=서울시향일본계 미국인 작곡가 폴 치하라(오른쪽)가 지난달 19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서울시향 정기 공연에서 무대에 올라 관객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있다. 사진 제공=서울시향


같은 아시아계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도 곡을 만드는 데 영향을 미쳤다. 치하라는 평소 용재 오닐에 대해 자주 동질감을 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치하라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내 일본군 포로수용소에 3년간 억류된 적이 있고, 용재 오닐의 어머니는 한국전쟁으로 인해 미국에 입양된 전쟁고아였다. 최근 미국 사회에서 아시아인 혐오가 문제로 대두되지만, 두 사람 모두 자라면서 이런 차별을 경험했다. 치하라는 “용재 오닐과 나는 유럽 문화의 사회에서 이민자가 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잘 알고 있다”며 “미국 시민이지만 우리를 종종 적으로 취급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이 곡에 대해 “용재 오닐이 삶 속에서 겪었던 외로움·거절·두려움을 넘어선 승리, 그리고 미국인이자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예술가로서 본인이 거둔 승리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소개했다. 비올라의 높은 음역대 연주로 시작하는 이 협주곡의 주요 멜로디는 용재 오닐을 거부하고 괴롭히며 잔인한 언어폭력을 가한 군중에서 벗어난 개인적인 사색의 세계를 다루고 있다는 게 치하라의 설명이다. 작품 속에서는 우리 민요 ‘아리랑’의 선율이 등장하더니 곧바로 일본의 대중가요 ‘우에니 무이테’의 멜로디로 절묘하게 연결되기도 한다.

치하라는 클래식 음악은 물론 현대음악, 재즈, 팝, 일본 민속음악 등 갖가지 음악에서 영향을 받아 장르를 넘나들며 활동해왔다. 그는 “50여 년간 할리우드·브로드웨이·카네기홀을 아울러온 음악 경력이 매우 자랑스럽다”며 “좋은 음악과 나쁜 음악이 있을 뿐, 단순히 다양한 스타일과 문화적 뿌리로 인해 거부되거나 오해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박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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