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과학기술 인력 양성을 위한 ‘발상의 전환’을 주문한 가운데 교육부가 반도체 인력 양성을 위해 수도권 대학 첨단 학과 정원을 늘리는 등 파격적인 방안을 관계 부처와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국방부는 문재인 정부에서 폐지 얘기가 나왔던 병역특례요원을 반도체 산업에 한해 확대하겠다고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8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교육부 출입 기자들을 만나 “학부 이상 대학에서 반도체 관련 인력을 산업에서 원하는 수준만큼 키워내야 하는데 규제가 걸림돌”이라며 “관계 부처와 협의해 지금보다 파격적인 대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 차관은 수도권 대학 학부 정원 총량 규제를 언급하면서 “규제 안에서 할 것이냐, 전략산업이니 예외로 특별한 룸(여지)을 만들어줄 것이냐(의 문제)”라며 “반도체 분야를 집중적으로 육성해야 하므로 여건이 있는 곳에 특례를 주는(방안)”이라고 설명했다.
장 차관의 발언은 현행 수도권정비계획법 등 규제 테두리 안에서 증원을 가능하게 할지, 반도체 등 첨단산업 등에 대해서만 특례를 두는 방식을 할지를 검토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수도권정비계획법 내에서 증원할 수 있는 첨단 학과 규모는 8000명 정도로 추산된다.
장 차관은 수도권 대학의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첨단 학과 정원이 순증되는 것인지를 묻는 질문에는 “수요 제기를 대학이 하고 우리(교육부)가 새로운 기준에 따라 하도록 해주겠다는 것”이라며 “순증이라 봐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반도체가 이름에 들어가는 반도체 학과의 연간 전공자 규모를 780여 명, 반도체 공정에 필요한 전공까지 포함한 반도체 관련 학과의 정원 규모는 약 2만 명으로 보고 있다.
학과 정원을 늘리는 데 있어 당장의 걸림돌은 수도권정비계획법이다. 1982년 제정된 수도권정비계획법은 수도권으로의 인구 집중을 막기 위해 대학 정원을 제한하고 있다. 대학 정원 내에서 수요가 낮은 학과의 정원을 줄일 수도 있지만 이해관계가 얽힌 교수들의 반발로 쉽지 않다.
대학과 기업이 택한 일종의 우회로가 ‘계약학과’ 형태였다. 계약학과는 산업체가 맞춤형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대학과 계약을 맺고 운영하는 학위 과정으로 대학 입학 정원과 별개로 학생을 모집할 수 있어 기업체들로부터 인기다. 하지만 일부 상위권 대학·기업에만 국한돼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대학을 둘러싼 규제 완화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수도권정비계획법은 법 개정이 필요한 만큼 국회의 협조가 필요한데 여소야대 상황이어서 현실적인 어려움이 예상된다. 또 계약학과나 반도체학과가 수도권 대학 중심으로 확대된다면 지방대의 위기가 더욱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장 차관은 이러한 지적에 대해 “수도권 규제가 없다는 게 아니라 전체적인 틀은 가져간다”며 “전체 대학 정원 47만 명 중 반도체 관련은 2만 명 정도라 좌지우지할 정도의 인원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국무조정실 출신인 장 차관의 부임과 공공행정학자 출신인 박순애 장관 후보 지명에 이어 윤 대통령까지 “교육부도 경제 부처라고 생각하라”며 강하게 개혁 주문을 걸자 교육계에서는 교육부가 개편되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이에 장 차관은 “교육부가 기존에 해오던 눈높이나 부처 협력을 전면 바꿔달라는 것”이라며 “교육부가 경제 부처가 돼야 한다는 이야기는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수요와 흐름에 맞춰 제도를 바꾸고 인력 양성이라면 우리가 적극적으로 얼마나 필요한지, 어느 부분을 고쳐야 하는지 (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