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전쟁 공포가 빚은 '전율'…참혹하지만 아름다운 '선율'로

■네빈 알라닥 국내 첫 개인전

19C 포탄 등 재료 삼은 설치작품

터키행진곡 이면의 문화패권 폭로

실제 소리 내는 악기 조각도 눈길

네빈 알라닥의 국내 첫 개인전 '모션 라인'이 한창인 바라캇 컨템포러리 전시 전경.네빈 알라닥의 국내 첫 개인전 '모션 라인'이 한창인 바라캇 컨템포러리 전시 전경.




날아와 박힌 포탄들이 악보를 그린다. 쾅쾅 꽂힌 대포알의 높낮이를 더듬으며 한 음 한 음 연주한 곡은 탄식과 함성이 버무려진 ‘참혹하고도 아름다운 소리’를 낼 것만 같다. 벽에 새겨진 악보를 눈으로 읽고 입으로 소리 내 보자. ‘터키행진곡’이란 별칭으로 더 유명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11번 A장조’의 마지막 악장이 더듬더듬 새어 나온다. 모차르트가 활동하던 18세기 후반의 오스트리아는 지금의 터키인 오스만 투르크와 전쟁 중이었다. 모차르트는 악보 한 귀퉁이에 연주방식을 설명하며 ‘터키풍으로’라고 적었다. 전쟁을 타고 터키풍 음악과 이국적 예술 취향이 함께 전파된 아이러니한 시절이다. 이 같은 정치·군사적 충돌과 문화의 기묘한 교차점은 현대미술가 네빈 알라닥(50·사진)을 자극했다. 서울시 종로구 팔판동 바라캇 컨템포러리 1층 전시장 벽면을 차지한 설치작품 ‘행진곡(Marsch, Basel)’(2014)의 탄생 배경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위해 바젤역사박물관에 소장된 19세기 포탄들을 잠시 꺼냈고, 94개의 녹슨 철로 형태를 떠 재료로 삼았다.

음악과 미술을 공감각적으로 다루는 현대미술가 네빈 알라닥. /사진제공=바라캇 컨템포러리음악과 미술을 공감각적으로 다루는 현대미술가 네빈 알라닥. /사진제공=바라캇 컨템포러리


서로 다른 악기들을 자르고 이어붙인 '아상블라주' 작업인 네빈 알라닥의 '공명기' 연작. /조상인기자서로 다른 악기들을 자르고 이어붙인 '아상블라주' 작업인 네빈 알라닥의 '공명기' 연작. /조상인기자



터키 태생으로 현재는 독일에서 활동하고 있는 알라닥의 국내 첫 개인전 ‘모션 라인(Motion Lines)’이 한창이다. 작가는 음악의 선율과 전쟁 공포의 전율을 뒤섞으며 ‘터키행진곡’ 이면에 얽히고 설킨 문화 패권을 폭로했다. 악기로 조각도 만들었다. 2018년작 ‘공명기’는 하프, 만돌린, 어쿠스틱 기타, 만돌린, 차임, 북 등 여러 악기의 복합체다. 일상용품이나 폐품 등 물건을 모아 붙여 작품을 만드는 ‘아상블라주’ 조각이다. 현악기의 직선, 울림통의 원을 비롯한 삼각형, 사각형 등의 기하학적 형태가 놀라운 조화를 이룬다. 더 놀라운 점은 악기전문가와 협업 제작한 것이라 실제 소리도 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4일에는 갤러리에서 연주 퍼포먼스도 진행됐다. 다양한 문화권에서 온 악기들의 여러 소리가 공존하는 이 조각을 두고 작가는 “악기들의 어머니”라고 했다 한다.

관련기사



서로 다른 악기들을 자르고 이어붙인 '아상블라주' 작업인 네빈 알라닥의 '공명기' 연작. /조상인기자서로 다른 악기들을 자르고 이어붙인 '아상블라주' 작업인 네빈 알라닥의 '공명기' 연작. /조상인기자


서로 다른 악기들을 자르고 이어붙인 '아상블라주' 작업인 네빈 알라닥의 '공명기' 연작. /조상인기자서로 다른 악기들을 자르고 이어붙인 '아상블라주' 작업인 네빈 알라닥의 '공명기' 연작. /조상인기자


유수의 미술관과 비엔날레에서 작품을 선보인 알라닥은 지난 2017년 제57회 베니스비엔날레와 카셀도쿠멘타에 동시에 초청받으며 전성기의 절정에 올랐다. 전시장 안쪽에서 만날 수 있는 3채널 영상작품은 2013년 샤르자비엔날레의 의뢰로 제작된 것. 화려한 호텔의 스프링쿨러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아랍의 타악기 다르부카를 두드리는 소리, 황량한 사막 위를 굴러다니는 탬버린이나 모래 위를 끌려다니는 방울들의 소리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이주민들의 쓸쓸한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또 다른 영상작품 ‘흔적’(2015)은 작가가 어린 시절을 보낸 슈투트가르트의 놀이터를 배경으로 한다. 바람 빠지며 날아가는 풍선의 푸푸거림, 흔들리는 트라이앵글의 찰랑거리는 소리, 기울어져 절로 움직이는 아코디언, 낡은 그네와 녹슨 회전형 놀이기구가 내는 삐걱거림은 ‘인간 없는 연주’지만 관계에 대한 노래다.

여러 문화권에서 수집한 카페트를 소재로 작업한 네빈 알라닥의 '소셜 패브릭, 라운드 앤 라운드' /사진제공=바라캇 컨템포러리여러 문화권에서 수집한 카페트를 소재로 작업한 네빈 알라닥의 '소셜 패브릭, 라운드 앤 라운드' /사진제공=바라캇 컨템포러리


다양한 문화권에서 수집한 카페트를 오리고 다시 붙인 ‘소셜 패브릭, 라운드 앤 라운드’는 파편화 된 정처없는 존재들이 그럼에도 안정적으로 저마다의 자리를 차지하며 공존한다. 갈갈이 찢겼을지언정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 잘리고 덧붙었어도 소리를 내는 알라닥의 ‘악기 조각’과 같은 맥락이다.


글·사진=조상인 미술전문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