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한일 항로’에서 담합한 국내외 선사들에 대규모 과징금을 부과하는 한편 ‘한중 항로’ 운행 선사들에 대해서는 시정 명령을 내렸다. 공정위는 올 초 ‘한·동남아’ 노선에서 15년간 담합한 23개 선사에 총 962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어 이번 결정으로 해운담합 제재가 마무리됐다는 입장이다.
반면 해운사들은 ‘해수부에 신고하고 화주단체와 협의한 공동행위는 담합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해운법을 근거로 공정위가 잘못된 결정을 내렸다고 반발하고 있다.
공정위는 2003년 2월부터 2019년 5월까지 총 76차례 운임을 합의한 ‘한일 항로’ 운행 15개 선사에 시정 명령 및 과징금 총 800억 원을 부과한다고 9일 밝혔다. 또 ‘한중 항로’에서 2002년 1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총 68차례 운임을 합의한 27개 선사에 대해서는 과징금 없이 시정 명령을 부과하기로 했다. 한일 항로는 14개 국적선사 및 1개 외국적선사의 시장점유율이 최대 93.7%에 달한다. 한중 항로는 16개 국적선사 및 11개 외국적선사 시장점유율이 최대 83.5% 수준이다.
공정위는 이 선사들이 약 17년간 기본운임의 최저수준, 각종 부대운임의 도입 및 인상, 대형화주에 대한 투찰가 등 제반 운임 등에 대해 합의했다고 파악했다. 공정위 조사 결과 이 선사들은 운임 합의를 위해 다른 선사의 화물을 서로 넘보지 않기로 하고 기존 거래처는 유지하도록 하는 ‘기거래 선사 보호’에 합의했다. 또 담합에 참여하지 않은 화주에게 컨테이너 입고금지나 예약취소 등으로 선적을 거부해 합의된 운임을 수용하게끔 강제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번 조치는 1월 한·동남아 항로에서의 운임 담합행위를 제재한 데 이어 한일과 한중 항로에서 17년간 불법적으로 이뤄진 운임 담합행위를 제재한 것”이라며 “이를 통해 그동안 법이 허용하는 범위를 넘어 불법적으로 이뤄진 선사의 운임 담합 관행이 타파되는 계기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공정위 결정에서 한중 노선에 과징금이 부과되지 않은 것은 이들 항로의 특이성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국과 중국 선사들은 황해정기선사협의회를 구성해 해당 노선을 독점 체제로 운영하고 있다. 무엇보다 과징금 부과 시 중국 정부가 한국 해운사를 상대로 보복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우려도 이 같은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해양수산부 또한 이 같은 내용의 의견서를 공정위 측에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양물류 주무 부처인 해수부는 이와 관련해 별도의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조승환 해양수산부 장관은 지난달 기자 간담회에서 “공정위에 해운 산업의 특수성 및 과징금이 부과됐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에 관해 설명했고 전원회의에 참석해 선사의 입장도 적극적으로 피력했다”며 “공정위도 나름의 입장이 있고 우리는 우리 나름의 입장이 있어서 조정하면서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해수부 장관으로서 공정위의 제재가 부당하다는 입장을 에둘러 표현했던 셈이다. 해운협회 등 관련 단체 또한 여전히 반발 중이다. 해운법에 따라 진행된 담합인 데다 해수부가 문제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는 이유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