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S 쓰나미' 닥친 전세계…'보이는 손'이 구명줄인가, '보이지 않는 손'이 답인가

[책꽂이]

■새뮤얼슨 vs 프리드먼 (니컬러스 웝숍 지음, 부키 펴냄 )

"자율조정 못 기다려" 새뮤얼슨

'경기침체땐 케인스식 처방' 강조

코로나發 재정주의 재조명 계기

"공짜 점심은 없다" 프리드먼

'자유가 더 풍요로운 삶 보장' 설파

작은정부 주창 정치적 유산 남겨

'정부-시장 사이 어디에 선긋나'

두 경제석학간 18년 설전 담아





신간 ‘새뮤얼슨 vs 프리드먼’은 태어난 지 100년이 넘었는데도 전세계 경제 정책과 정치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두 거물 경제학자간의 격돌을 다룬 책이다. ‘현대 경제학의 아버지’ ‘경제학자의 경제학자’로 불리는 폴 새뮤얼슨과 ‘자유주의 경제학의 거두’ 밀턴 프리드먼이 그 주인공이다.



프리드먼은 ‘작은 정부-큰 시장’이라는 레이거노믹스와 대처리즘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신자유주의 학자다. 윤석열 대통령도 대선 당시 ‘본인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으로 프리드먼이 쓴 ‘선택할 자유(Free to Choose)’을 꼽은 적이 있다. 새뮤얼슨의 ‘신고전파 종합이론’은 신자유주의 공세에 밀려 주춤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최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부활한 상황이다.

저자는 영국 신문 ‘타임스’ 창간 편집인 등을 역임한 언론인 니컬러스 웝숍이다. 그는 전작 ‘케인스 하이에크’에서 20세기 전반기 숙명의 라이벌인 존 메이너드 케인스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간의 대립을 다뤘다. 이번에는 20세기 후반기 주류 경제학을 양분한 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가 어떤 유산을 남겼는지 분석한다. 또 두 학자의 대학 시절과 개인사, 관점 차이를 불러온 대공황 경험, 여러 에피소드도 담았다.

폴 사뮤엘슨/사진제공=부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폴 사뮤엘슨/사진제공=부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책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점은 이념적 차이에도 상호 존중하는 이들 거장들의 토론 문화다. “우리가 만난 지… 이제 겨우 62년이 되었군… 우리가 서로 의견이 갈리는 때가 많기는 했지만… 근본적인 지점에서는 서로를 이해했다는 사실을 나중에 사람들이 알게 됐으면 좋겠어. 그동안 서로를 향한 애정과 우정, 존경심을 꽤나 잘 감춰 왔다는 걸 말이야”(1995년 12월 새뮤얼슨에서 프리드먼이 보낸 편지 구절)

책은 시카고대에서 서로 알고 지내던 두 사람이 1966년 주간지 ‘뉴스위크’에서 칼럼 대결을 펼치는 과정으로부터 시작한다. 주류 경제학 사상 가장 치열했던 이들간의 설전은 인플레이션과 같은 당시 현안은 물론 ‘정부와 시장 사이 어디에 선을 그어야 하는가’라는 지금도 해결하지 못한 근본적인 문제를 두고 무려 18년간 이어졌다.



1960년대만 하더라도 미 경제학계는 대공황의 여진 탓에 완전 고용, 소비와 투자 확대를 위해서는 정부가 시장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케인스주의가 주류였다. 새뮤얼슨은 1951년 고전 경제학과 케인스 경제학을 융합한 신고전파 종합 이론을 처음 선보였다. 경기가 좋아 완전고용 상태에 가까울 때는 시장경제 원칙을 따라는 게 낫지만 침체기에 돌입할 때는 케인스식 처방이 유효하다는 것이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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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도전자였던 프리드먼은 대공황은 정치인의 어설픈 손길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자본주의가 궁극적으로 모두에게 더 풍요로운 삶을 보장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불황, 인플레이션, 실업 등 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통화 공급량을 지목하며 이른바 ‘통화주의’를 창시했다. 대공황도 ‘시장 실패’가 아니라 잘못된 통화정책에 따른 ‘정부 실패’라고 규정했다.

이들간의 기나긴 논쟁은 경제학을 넘어 개인과 사회간의 관계, 즉 세계관을 둘러싼 충돌이기도 했다. 프리드먼은 단순히 효율적인 경제 체제를 위해서가 아니라 개인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자유시장을 옹호했다. 반면 새뮤얼슨은 시장에 제한을 두지 않으면 승자는 물론 패자가 발생하며 ‘자유’에도 우선 순위가 필요하다고 봤다. “새뮤얼슨이 정부와 민간으로 이루어진 혼합 경제 체제를 옹호한 반면 프리드먼은 자유 지상주의 낙원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말이 나지 않던 두 사람간의 대결은 1960년대말 서구에서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상승)이 발생하면서 일대전기를 맞이한다. 케인스주의자들은 인플레이션은 경제 성장으로 수요가 증가할 때 발생한다고 봤는데 이 같은 전례 없는 상황은 설명할 길이 없었다. 새뮤얼슨은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정부가 임금과 상품 가격을 법으로 정하는 한편 저소득층을 위해 세금을 더 걷어 공공지출을 늘리자고 제안한다. 반면 프리드먼은 시장에 유통되는 통화량을 줄이면 물가를 관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밀턴 프리드먼/사진제공=부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밀턴 프리드먼/사진제공=부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그렇다면 저자가 보기에 궁극적인 승자는 누구일까. ‘인플레이션 파이터’ 폴 볼커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Fed) 의장은 프리드먼의 주장을 일부 수용해 무지막지한 기준금리 인상을 통해 물가를 잡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대에 이르러 통화주의는 ‘감세를 통한 수요 창출’이라는 공급주의 경제학에 밀려 보수 학자들 사이에서도 설자리를 잃고 만다. 프리드먼은 1970년대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의 지원으로 영국에서 통화량을 줄여 인플레이션을 극복하려고 시도했지만 지나친 긴축 정책으로 대규모 실업과 경기 침체가 발생하며 실패했다.

이 때문에 결국 이론적 타당성을 더 입증한 것은 새뮤얼슨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단적인 사례가 2008년 금융위기다. 미국은 시장 붕괴를 막기 위해 양적완화는 물론 민간 금융기관에 구제금융 자금 투입, 대규모 경기부양책 등을 내놓았다. 특히 코로나 팬더믹 사태 때는 주요국 정부가 현금을 뿌리기까지 했다. 저자는 “시장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아도 절대로 정부가 개입하면 안 된다는 생각은 자취를 감추었다”며 “코로나바이러스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고 시장에서 정부 입김을 지우고자 했던 프리드먼의 바람을 완전히 무너뜨렸다”고 말한다.

반면 저자는 프리드먼의 유산은 경제학보다는 정치적 영향력에 있다고 본다. 그로부터 시작된 신자유주의는 지난 50년간 자유 시장경제에 대한 욕망을 자극하며 작은 정부, 규제 완화, 소련 붕괴 이후 동유럽 국가의 민영화, 세계화 등을 가속화시켰다. 또 전통적인 복지 수당을 ‘부(負)의 소득세(저소득층에 지급하는 일정 수준의 보조금)’를 지급하자는 그의 주장도 코로나19 시기에 일부 국가에서 한시적으로 도입됐다. “프리드먼이 경제학보다 정치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친 반면 새뮤얼슨은 경제학과 사회에 눈에는 덜 띄지만 절대 지워지지 않을 흔적을 남겼다” 3만원.

최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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