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을 비롯한 한국 주요 기업들이 ‘제로코로나’ 정책에 따른 중국 정부의 강도 높은 봉쇄령과 정치적 리스크 등을 이유로 중국 시장에서 속속 떠나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9일 보도했다. 중국 시장의 리스크가 커지면서 글로벌 기업들의 고민이 깊어지는 가운데 한국 기업들이 탈(脫)중국 흐름을 이끌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눈에 띄는 탈중국 행보를 보이는 곳은 롯데그룹이다. 블룸버그는 롯데그룹이 중국 본사를 폐쇄하는 수순을 밟고 있으며 이미 철수가 마무리 단계에 들어간 상태라고 한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아모레퍼시픽도 중국 내 매장을 1000개 이상 폐쇄했다. 삼성디스플레이와 LG전자 등도 값싼 중국 현지 업체들과의 경쟁, 중국 당국의 고강도 봉쇄 정책으로 중국 내 일부 공장을 폐쇄하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덧붙였다.
이들 기업이 중국을 떠나는 가장 큰 이유는 앞날을 예측하는 게 불가능해서로 풀이된다. 한중 갈등이나 미중 갈등과 같은 정치적 리스크가 불거지면서 경영 환경이 수시로 급변하는 데다 외국 기업 입장에서 제로코로나 정책과 같은 중국 정부의 강경책에 대응하기도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시행한 설문조사에서 국내 기업 131곳 중 약 86%가 지난 10년간 중국 내 경영 여건이 악화했다고 답했으며, 그 이유로 정치 리스크와 외국 기업 차별, 미중 갈등, 규제 강화 등을 들었다. KOTRA 상하이·베이징사무소장으로 근무했던 스콧 김은 블룸버그를 통해 “중국은 더 이상 한국에 기회의 땅이 아니다”라며 “한국 기업들은 중국에서 돈을 벌 수 있다는 환상을 버리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특히 2017년 사드 배치에 따른 현지 불매 운동 등 오랫동안 지속된 정치 리스크는 중국 철수 결정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롯데는 2008년 이후 중국에서 공격적인 확장세를 이어갔으나, 2017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문제로 직격타를 맞은 이후 중국 사업 회복에 실패했다. 아모레퍼시픽 역시 사드 타격에서 벗어나지 못해 미국과 동남아시아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중국에서 마케팅·온라인 플랫폼을 운영하는 사업가 박상민씨는 "아직 중국에 머무를지 아니면 짐을 싸서 한국으로 돌아갈지 결정하지 못했다"며 "차이나 리스크를 예측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현지 철수와 별개로 중국에 대한 한국 기업의 의존도가 여전히 높다는 점은 남은 문제다. 최남석 전북대 무역학과 교수에 따르면 전기차 배터리에 사용되는 흑연 등을 포함해 한국 기업이 가장 필요로 하는 수입 원자재 228개 중 약 80%가 중국산이다.
다만 변화는 나타나고 있다. 블룸버그는 “최근 한국 정부가 반도체와 배터리·석유화학·자동차 등의 주요 원자재 공급처 다변화를 위한 태스크포스(TF)를 발족하는 등 정부와 기업이 대중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