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국무총리가 첨단산업 인재 양성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한 것은 6·1 지방선거 이후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핵심 어젠다로 채택했기 때문이다. 한 총리는 9일 기자들과 만나 “윤 대통령이 지방선거 이후 본격적으로 본인의 국정을 추진해야 하는 과정에서 그려낸 큰 어젠다”라며 “반도체·인공지능(AI)·배터리 등 31개 부문을 키워 일자리를 만들고 주력 산업을 혁신해 세상을 바꾸겠다고 선언했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한 핵심 방안이 인재 양성이었다. 기술과 자본은 국가 간 이동이 자유로운 데 비해 사람은 상대적으로 고정적인 만큼 국가 미래를 책임질 핵심 요소라는 이유에서다.
◇“반도체 전쟁 상황”…규제 혁파도 강조해=한 총리는 이날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과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대표, 김남철 네패스 사장, 여문원 미코세라믹스 대표 등 반도체 기업 대표를 만나 현장 간담회도 진행했다. 윤 대통령이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한 정부 지원을 당부한 지 이틀 만에 반도체 공장을 직접 찾은 것이다.
한 총리는 이 자리에서 “과거에는 정부가 돈을 투입하고 경쟁을 제한하고 토지를 확보해주는 이런 정책을 폈다”며 “하지만 첨단산업을 육성하는 중요한 정책은 인재 양성이다. 또 하나의 큰 골격인 규제 혁신과 철폐 등 걸림돌을 어떻게 치울지 방법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또 “반도체를 둘러싸고 세계적으로 지금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고 위기의식을 표명한 뒤 “전쟁이 일어난 상황에서 조그만 문제를 갖고 왈가왈부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반도체 기업이 제안한 생산 설비 신증설 관련 규제 완화와 인허가 절차 간소화 등 주요 규제를 개선하도록 검토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인재 양성은 수요 아닌 공급 주도로=한 총리는 이날 인재 양성과 관련해 두 가지를 핵심 포인트를 제시했다. 첫 번째는 수도권과 지방의 균형 발전을 염두에 둔 방식이다. 그는 “윤 대통령이 수도권과 지방을 같은 숫자로 증원하자고 제안했다”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대학 정원의 경직성을 풀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수도권 대학의 경우 정원총량제 등으로 신규 학과를 개설하면 기존의 다른 학과 인원을 줄여야 한다. 이 때문에 신규 학과 개설이 쉽지 않아 기업이 학과 증설과 운영에 필요한 비용을 지불하면 계약학과라는 제도를 통해 우회적으로 인재를 육성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한 총리는 이에 대해 “40~50명을 육성하는 반도체과 계약학과를 만들려면 기업이 수백억 원을 투자해야 해 너무 비싸다”며 “따라서 상대적으로 총량 규제에서 자유로운 지방의 정원을 늘리면서 동시에 중앙정부가 지원하고, 수도권 대학의 정원도 이에 연동해 함께 늘리는 방식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인재 양성을 공급 주도로 선제 대응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한 총리는 “대개 정원을 늘리려면 무슨 산업에서 몇 명이 필요한지 계산하는 방식, 즉 ‘디맨드 렛(demand let) 인재 양성’ 방식이었는데 이제 공급 주도의 ‘서플라이 렛(supply let) 인재 양성’ 방식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와 관련해 바이오 산업의 인재를 사례로 들었다. 한 총리는 “김대중 정부에서 바이오를 육성한다고 대학을 지원했는데 처음에는 (졸업 이후) 실업이 넘쳐났다”며 “하지만 셀트리온이 창업하는 등 산업이 성장하면서 지금은 첨단산업으로 어마어마하게 컸다”고 강조했다.
◇여야정 등 협치 장치 가동도 검토=한 총리는 또 여소야대의 정치 상황을 고려해 협치의 제도적 방안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최종 의결한 62조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거론하며 “야당이 여당에 대해 최종적으로 협조했고, 이것은 또 하나의 협치 사례를 만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앞으로 이런 협치를 통한 우리 정책의 추진에 대한 노력을 더 많이, 더 자주 하려고 하고 있다”며 “(여야) 대표들과 대통령과 여야정 협의체 같은 것도 하고, 총리와 원내대표들 간 협치의 제도적인 장치도 지금 야당과 협의해서 만들려고 생각 중”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