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며 흑자 기조를 이어가던 경상수지마저 24개월만에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1997년 이후 처음으로 재정적자와 경상수지 모두 적자를 기록하는 ‘쌍둥이 적자’ 위험이 높아졌는데요, 그나마 수출이 호조세를 보이는 점은 다행입니다. 산업연구원은 올해 우리나라 수출액이 사상 최초로 7000억달러 선을 넘은 7038억달러로 예측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우리나라 수출액이 사상 처음으로 일본 수출액을 추월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됩니다.
4월까지 한국의 누적 수출액은 2317억달러입니다. 1년 전보다 17.3%오른 수치인데요, 같은 기간 일본의 누적 수출액 2527억달러와 비교하면 210억달러 차이가 났습니다. 지난해 4월까지 한국과 일본의 누적 수출액 차이가 491억달러에 달했던 것과 비교하면 차이가 반으로 줄었습니다. 심지어 지난 1월에는 한국의 수출액이 일본의 수출액보다 3억달러 더 많기도 했는데요, 이에 정부 관계자는 “하반기에도 수출호황이 이어진다면 올해 한일 수출액이 역전될 수 있다”고 기대감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양국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과 일본의 수출 증가율은 비슷합니다. 일본은 올해 1~4월 9.6% 19.1% 14.7% 12.5%의 수출 증가율을 기록했습니다. 같은 기간 15.5%, 20.7%, 18.2%, 12.6%의 증가율을 보인 한국과 유사해 보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1년 전보다 수출액 격차가 크게 줄어들 수 있었을까요.
일본은 수출 증가율을 엔화 기준으로 발표합니다. 그런데 최근 엔화는 힘을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 10일 기준 뉴욕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엔화는 장중 134엔까지 올랐습니다. 2002년 4월 이후 20년만에 최저 수준으로 1월 말 달러당 113엔에서 반 년도 안되는 사이에 엔화 가치가 17% 급락했습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급격히 금리를 올리는데도 일본은행이 ‘제로 금리’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이에 달러 환산 수출액이 급격히 감소했습니다. 일본의 엔화 기준 수출액이 지난해 4월 7조 1803엔에서 올해 4월 8조 756엔으로 12.5% 올랐지만 엔저에 같은 기간 달러 기준 수출액은 658억달러에서 640억달러로 2.7% 감소했습니다.
엔저는 기본적으로 일본 수출 기업에 호재입니다. 가격 경쟁력이 생기고 달러로 벌어들인 수익을 엔화로 환산하면 기업의 수익이 개선됩니다. 일본은행과 일본정부는 이 때문에 엔저가 일본 경제 전체에 이익이 된다고 주장합니다. 엔저가 우리나라 수출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석유화학·철강·가전 등 일본과 경쟁이 치열한 업종에서는 엔저가 우리나라의 가격경쟁력을 깎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일본과 우리나라의 수출 주력 품목이 달라진 만큼 경합도가 낮아졌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최근 내놓은 ‘동아시아 4개국 수출 경쟁력 비교’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4대 주력 수출 품목은 전자기기, 기계, 자동차, 반도체에서 한일 수출경합도는 전자기기는 2011년 63.5에서 2021년 57.0으로, 기계는 65.6에서 63.4로, 자동차는 91.1에서 90.3으로 하락했습니다. 반도체만 58.3에서 60.7로 소폭 상승했습니다. 엔저 현상에도 일본에 대한 한국 수출 경쟁력 저하 우려가 줄어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을 걱정하기에 상황이 여의치 않습니다. 전쟁 여파로 고유가가 갈수록 심각해지는데다 물가도 치솟고 있기 때문입니다. 올해 경상수지가 적자로 돌아설 수 있다는 우려도 큽니다. 만성적인 재정수지 적자 상황에서 경상수지마저 적자로 전환한다면 외환위기였던 1997년 이후 25년 만에 쌍둥이 적자 가능성도 거론됩니다. 쌍둥이 적자가 현실화한다면 원·달러 환율 상승과 함께 국가신용등급이 하락하고 외국인 자금 이탈이 나타나면서 경제 위기가 본격화될 수 있습니다. 수출이 마지막 버팀목인데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가 총파업에 돌입하며 부산항 마비 우려도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