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청와대 건물을 활용해 국립근대미술관 만들자"

'이건희컬렉션' 계기로 부상한 근대미술관 논의

청와대 역사성 고려해 '국립근대미술관' 주장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이 '국립근대미술관을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대표해 청와대 부지에 국립근대미술관을 건립하는 방안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이 '국립근대미술관을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대표해 청와대 부지에 국립근대미술관을 건립하는 방안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전근대적 제왕적 대통령제의 상징인 청와대를 ‘국립근대미술관’으로 전환한다면 근대국가, 국민국가의 완성을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산업화와 민주화를 견인한 상징적 공간의 의미를 보존하고 확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국립근대미술관을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이하 ‘근건모’)이 결성 1주년을 맞아 13일 서울 종로구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 세미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가칭 ‘이건희기증관’의 졸속 추진을 폐기하고 ‘국립근대미술관’ 건립을 촉구하면서 그 자리로 청와대 기존 건물의 활용을 제안했다. ‘근건모’는 지난해 5월,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이 수집해 기증한 일명 ‘이건희 컬렉션’에 의미있는 근대미술품이 다량 포함된 것을 계기로 발족했다. 현재 인원은 미술계 인사를 중심으로 약 800명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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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을 대표해 이날 기자회견을 주도한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은 “세종시에 ‘행정’을 내어준 서울시가 ‘경제’와 ‘문화예술’을 채울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면서 “청와대 부지는 그 역사성과 더불어 서울의 문화중심으로서 뮤지엄 클러스터(Museum Cluster·박물관미술관 집적단지) 완성과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청와대 부지에 국립근대미술관을 건립하는 것에 대한 구체적 방안으로 본관과 관저를 상징성을 고려해 현재 상태를 유지하는 대신, 춘추관을 한국근대 수묵채색화 상설전시실로 사용하자고 제안했다. 여민관 3개동은 기획전시실, 경호동 3개동은 한국근대유화관으로 이용하며 층고가 높은 영빈관은 한국근대 조각전시실로, 연무관은 멀티미디어관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청와대 헬기장에 ‘기증관’을 신축하고, 직원 사택이 있던 대경빌라를 예술가 레지던시로 활용하자는 안도 내놓았다. 인근 삼청로에 2013년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경우 총사업비 2460억원 중 공사비가 1276억원, 부지매입비가 1038억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경제적 효율성도 상당하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청와대 주변으로는 국립현대미술관부터 국립고궁박물관과 국립민속박물관, 서울시립공예박물관과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등이 분포하고 있어 뮤지엄 복합지구로서의 활용도도 높다.

청와대 부지부터 경복궁 일대와 송현동 부지를 아우르는 지역은 국립고궁박물관과 국립민속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시립공예박물관 등 미술관,박물관 밀집지역이다. /사진제공=국립근대미술관을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청와대 부지부터 경복궁 일대와 송현동 부지를 아우르는 지역은 국립고궁박물관과 국립민속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시립공예박물관 등 미술관,박물관 밀집지역이다. /사진제공=국립근대미술관을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


우리나라에는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고궁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등의 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이 있지만 1850년대 이후 1960년대까지 아우르는 근대기 미술을 집중 연구할 국립근대미술관은 빠져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덕수궁관을 중심으로 근대미술 전시를 주로 선보여 왔으나 김환기의 대표작이나 이중섭의 소 그림, 박수근의 대형 유화 한 점 변변한 소장품으로 확보하지 못한 현실이 안타까움으로 지적돼 왔다. 1969년 국립현대미술관 개관 이후에도 꾸준히 국립근대미술관의 필요성에 대한 주장이 있던 중, 지난해 삼성가(家)가 이건희 회장 수집품을 국가에 기증한 이후 미술계를 중심으로 국립근대미술관 건립 주장이 급물살을 이뤘다. 하지만 정부는 종로구 송현동 부지에 가칭 ‘이건희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며 지난해 11월 땅 주인인 서울시와 MOU를 체결했다.

‘근건모’ 측은 이건희 컬렉션 총 2만3181점이 시대상으로는 청동기부터 현대까지, 장르상으로는 도자·금속·민속·유화·조각·판화·영상 등 다양한 분야를 포함하는 점을 강조하며 “내용상 느닷없는 ‘국립융복합뮤지엄’이라는 ‘이건희기증관’ 또는 ‘이건희미술관’ 건립을 현혹해서는 안 된다”면서 “지난 정부의 이런 결정은 공청회·토론회 등 의견수렴과정도 생략한 채 밀실에서 정한 절차적 정당성이 결여된 결정이었다”고 비판했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 중 54.2%에 달하는 1만2558점이 전적(古書)이다. 또한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1488점 중 약 80%가 근대미술품이라는 점이 이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정 전 실장은 “이는 기증품의 가치를 폄훼하는 게 아니라 귀한 기증품에 대한 분류, 분석이 기증받은 이의 도리와 책무”라며 “문화재와 예술품은 시대·장르에 따라 수장고 설계부터 온도·습도 관리방식이 제각각이며 분야별 전문 학예연구자를 확보해야 제대로 된 미술관이 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송현동 부지에 ‘국립근대미술관’이 들어서는 것에는 찬성하지만, 기증품을 한 데 모은 소위 ‘융복합뮤지엄’에 대해서는 부정적 입장을 피력했다.


글·사진=조상인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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