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여명]尹 정부, ‘집단사고의 함정’에 빠질라

최형욱 선임기자

비슷한 성향의 인물만 중용하면

동지의식에 집단적인 오판 쉬워

정권 쓴소리 ‘악마의 변호인’ 두고

‘조국 사태’ 민주당 반면교사를





일본 제국주의는 왜 자신보다 열 배나 강한 미국과 승산 없는 태평양전쟁을 벌이면서 ‘집단적 자살’로 나아갔을까. 일본 해군 지도부는 전쟁 전부터 패배를 예견했고 호전적인 육군조차 승리에 회의적이었다. 급기야 일본 천황이 “절망적인 전쟁”을 피하기 위해 미국과 협상해 보라고 지시했지만 군 지도부는 책임을 미루다가 결국 자국민 300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게 된다.

사회학자들이 이 같은 오판을 ‘집단사고의 함정’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한다. 구성원의 성향이 비슷하면 만장일치의 압박을 받아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기 쉽다는 것이다. 한 집단이 동지 의식과 순혈주의로 무장할 경우 외부 위험은 과소평가하고 자신들의 힘은 과대평가하게 되면서 반대 의견을 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게 된다.



최근 윤석열 정부가 주요 권력 기관 책임자에 검찰 출신 인사를 대거 중용하고 초기 내각 인사를 ‘서오남(서울대·50대 이상·남성)’ 일색으로 채운 것을 두고 ‘집단사고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가 다양한 이해관계를 통합하고 갈등을 조정해야 하는데도 검찰 출신이 독주하면 각 부처 간의 견제와 균형이라는 국정의 기본 원리마저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복현 전 서울북부지검 부장검사를 금융감독원장에 앉힌 것을 두고 금융 건전성 확보와 금융산업 발전이라는 근본 업무와 동떨어진 인사라는 지적이 많다. 이 같은 비판에도 윤석열 대통령은 “적재적소에 유능한 인물을 쓰는 것이 인사 원칙”이라며 ‘마이웨이’ 의사를 굽히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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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당 내에서도 비판이 나온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12일 현 정부의 검찰 편중 인사 논란과 관련해 “너무 능력주의에 이렇게 휩싸이다 보면 다양성이 가진 힘을 간과하기 쉽다”며 “다양해야지 사고의 폭이 넓어지고 여러 가지 문제점 또는 리스크에 대해서 미리 검증이 되고 그러면서 더 경쟁력이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자신의 벤처 기업 운영의 경험에 근거해 “보통 사람들이지만 굉장히 다양한 전공과 성별과 나이에서 다양한 10명이 서로 경쟁을 하게 되면 천재 10명보다 다양성 10명이 이긴다”라고까지 했다.

사실 유명 최고경영자(CEO)들은 경영 환경 급변에 맞서 내부에 ‘악마의 변호인’ 제도를 두는 경우가 많다. 이질적이고 다양한 존재가 있어야 새로운 아이디어도 나오고 생존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텔 CEO였던 앤디 그로브는 중요한 회의가 별 얘기 없이 끝날 기미를 보이면 반대 의견을 가진 직원, 즉 ‘싸움닭’을 불러들여 격렬한 논의가 일어나도록 했다. 찰스 나이트 전 에머슨 일렉트릭의 CEO도 상대방의 아이디어가 훌륭하더라도 일부러 반대 의견을 던져 토론을 유도했다. 미 금융회사 시트린그룹의 조너선 시트린 전 CEO는 모든 사안에 반대 의견을 내는 ‘블로커(방해꾼)’를 뒀다. 순혈주의 조직은 결국 망한다는 사실을 경험에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존 F 케네디 대통령도 1961년 쿠바 피그만 침공이 실패로 끝나자 비슷한 성향의 집단이 내리는 판단의 위험성을 알고 참모들이 의도적으로 다른 의견을 내도록 유도했다. 이는 1962년 쿠바 미사일 사태를 성공적으로 해결하는 원동력이 됐다.

윤 대통령은 검찰공화국이냐는 비판에 “과거에는 민변 출신들이 아주 도배를 하지 않았나”라고 반박하기에 앞서 정권 내 취약점을 공격하는 ‘레드팀’을 운영했으면 한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의 위기를 반면교사로 삼을 만하다. ‘조국 사태’ 당시 민낯을 드러낸 것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위선뿐만이 아니었다. 바로 이념적·정서적으로 통일된 586 민주화 세력의 연고주의와 온정주의였다. 사실 조국 문제는 한 개인의 도덕적 일탈로 끝낼 수 있었는데도 민주당은 ‘조국 수호’에 매달리다가 결국 진보 진영 전체가 위기에 몰리고 말았다. choihuk@sedaily.com


최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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