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피플

"패스트푸드에 갇힌 사회… '음식 문맹' 만들었죠"

'지역 특성 맞는 식생활 추구' 김종덕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장

남에게 의존하는 음식 문화 확산

조리·음식 자주권 상실로 이어져

고유 종자·식재료 위기도 초래

로컬푸드로 도·농 단절 극복해야

김종덕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장김종덕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장




“현대인들은 이미 패스트푸드의 포로가 된 상태입니다. 게다가 코로나19로 인한 배달 문화 확산으로 ‘집밥’이 점차 사라져가고 있죠. 도시인들 대부분은 이미 ‘음식 문맹’으로 전락한 상태입니다.”

김종덕(사진)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장은 13일 서울 안국동 사무실에서 가진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좋은 음식 확산을 막는 공범”이라며 이같이 지적했다. 슬로푸드는 지역 특성에 맞는 전통적이고 다양한 식생활 문화를 추구하는 국제 운동이다. 경남대 명예교수이기도 한 김 협회장은 2000년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슬로푸드 운동에 참여했고 2014년 한국 협회를 만든 후에는 8년째 협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슬로푸드가 필요한 이유로 ‘식량과 음식 자주권 확보’를 들었다. 패스트푸드의 확산은 자신이 만들어 먹던 음식을 점차 남에게 의존하게 만들었다. 음식 자주권을 빼앗기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음식의 표준화는 다양한 먹을거리를 우리 사회에서 내몰아버렸다는 게 김 협회장의 평가다. 그는 “패스트푸드 하면 비만의 문제만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훨씬 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며 “가장 큰 문제는 우리에게서 조리 기술을 빼앗아가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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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트푸드뿐 아니다. 코로나19의 등장은 조리하지 않는 문화를 더욱 심화시킨다. 간단한 손가락 운동만 해도 집에서 원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고 설명서만 따라하면 되는 간편식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자신의 손으로 지어 먹던 집밥이 점차 밀려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조리 능력의 상실은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기도 한다. 음식을 만들 줄 모르는 50대 독신 남성들은 나가서 사 먹거나 라면 또는 간편식으로 끼니를 때우기 일쑤다. 건강에 좋을 리 없다. 그는 “현대인들이 나쁜 음식 문화에 빠지면서 좋은 음식을 확산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며 “기대 수명과 건강 수명의 차이가 18년이나 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종덕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장김종덕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장


도시만의 문제가 아니다. 효율성 제고를 최우선으로 하는 기업들은 비용을 줄이기 위해 되도록 저렴한 재료를 구입하려 한다. 국산보다 값싼 수입품 사용이 늘 수밖에 없다. 김 협회장은 “우리 식탁이 외국이나 대기업에 점령당하면 우리 농민들이 만드는 신선한 채소와 곡식은 설 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다”며 “우리 고유 종자와 식재료들은 심각한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협회가 ‘대한민국 맛의 방주 100’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도, ‘조리하는 대한민국’ 이벤트에 집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슬로푸드가 제시하는 해법은 농촌과 도시를 연결해 ‘먹을거리 공동체’로 복원하는 것이다. 핵심에는 로컬푸드가 자리 잡고 있다. 로컬푸드는 지역 주민의 요구를 반영하고 그들을 위해 생산된 먹을거리로, 생산자는 판매 걱정 없이 안정적으로 영농을 할 수 있고 소비자는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먹을거리를 섭취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는 게 김 협회장의 설명이다. 건강에 좋고(good) 생산과 조리 과정에서 환경을 훼손하지 않으며(clean) 생산자를 공정하게 대우하는 것(fair)은 이를 위한 중요한 기준이다. 그는 “로컬푸드가 제대로 이뤄진다면 도시와 농촌의 단절을 극복하고 상생 기반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며 “이렇게 된다면 농촌과 도시민이 함께 행복해질 수 있음은 물론 다양성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행복추구권이나 평등권처럼 ‘식량권’도 헌법에 명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누구든지 적절하게 먹을 권리가 있고 국가는 이를 존중하고 보호, 충족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김 협회장은 “식량권을 헌법에 담고 있는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57개국에 이른다”며 “우리도 식량 자주권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글·사진=송영규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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