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반도체 장비 공급’ 승부수…이재용, 네덜란드 총리·ASML CEO 만났다

李, 파운드리 경쟁력 강화 등 논의

베닝크 CEO에도 EUV 공급 요청

'반도체 초격차' 달성 위해 안간힘

유럽 최대규모 반도체 연구소 방문

바이오·AI 등 미래 먹거리 모색도

이재용(왼쪽 두 번째) 삼성전자 부회장이 14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위치한 ASML 본사에서 페터르 베닝크(가운데) ASML CEO, 마르틴 판 덴 브링크(오른쪽) ASML CTO 등과 함께 반도체 장비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전자이재용(왼쪽 두 번째) 삼성전자 부회장이 14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위치한 ASML 본사에서 페터르 베닝크(가운데) ASML CEO, 마르틴 판 덴 브링크(오른쪽) ASML CTO 등과 함께 반도체 장비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전자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이 네덜란드에서 마르크 뤼터 총리와 페터르 베닝크 ASML 최고경영자(CEO)를 연이어 만나 최첨단 반도체 장비 공급을 요청했다. 글로벌 반도체 경쟁이 치열해진 상황에서 이 부회장이 직접 민간 외교관 역할을 맡아 공급망 문제 해소에 팔을 걷어붙였다.
15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유럽을 출장 중인 이 부회장은 14일(현지 시간) 네덜란드 헤이그의 총리 집무실에서 뤼터 총리를 만났다. 두 사람은 2016년 9월 뤼터 총리 방한 이후 6년 만에 처음 만났다.






이 자리에서 이 부회장와 뤼터 총리는 반도체 사업과 관련한 포괄적·전략적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이 부회장은 나아가 공급난을 겪고 있는 ASML의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 협조를 요구했다. 네덜란드의 반도체 장비 기업인 ASML은 7㎚(1㎚는 10억분의 1m) 이하 초미세 공정 구현에 필수적인 EUV 장비를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생산하고 있다.

두 사람은 논의 끝에 삼성전자와 네덜란드가 반도체 사업에서 포괄적으로 협력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네덜란드는 연구개발(R&D)부터 설계, 장비, 전자 기기 완제품 등 반도체 관련 산업 생태계가 고루 발전한 나라로 꼽힌다. 글로벌 반도체 생태계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인수합병(M&A) 소문이 돌고 있는 차량용 반도체 기업 NXP도 네덜란드에 있다.

삼성 관계자는 “뤼터 총리는 반도체 외에 정보통신기술(ICT), 전기차, e헬스 등 혁신 기반 신산업에도 큰 관심을 보여 왔다”며 “반도체 외 분야에서도 삼성과 협력을 확대해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뤼터 총리와 만난 후 곧바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ASML 본사로 향했다. 마찬가지로 EUV 장비 수급 협조를 위한 행보였다. 이 부회장 입장에서는 2020년 10월 방문한 지 1년 8개월 만의 재방문이었다. 이 부회장은 이곳에서 베닝크 CEO를 비롯한 ASML 경영진을 만나 EUV 장비의 원활한 수급 방안을 협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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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회장이 이처럼 ASML과의 협력에 공을 들인 것은 원활한 EUV 노광 장비 수급이 삼성전자가 추진하는 ‘반도체 초격차’의 필수 요건이기 때문이다. 대당 2000억 원 수준으로 알려진 EUV 장비는 최첨단 반도체 제조 과정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사겠다는 회사는 줄을 섰지만 ASML은 이 장비를 연 51대밖에 출하하지 못한다. 최근 반도체 품귀 속에 공급이 한층 부족해지면서 글로벌 주요 업체들이 치열하게 확보 경쟁을 펼치고 있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시장에서 업계 1위 TSMC를 추격 중인 삼성전자도 EUV 장비 확보에 사활을 거는 회사 중 하나다.

장비 공급이 제한되다 보니 이를 많이 확보할 경우 자체 제조 역량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경쟁사의 생산 확대를 막는 반사이익도 누릴 수도 있다. 업계에서는 기업 총수인 이 부회장이 EUV 장비 확보에 직접 뛰어들면서 삼성전자가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고 봤다. 업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갖춘 글로벌 네트워크의 진가가 발휘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부회장이 기업인을 넘어 국가를 연결하는 민간 외교관 역할을 톡톡히 했다는 시각도 있다. 실제로 뤼터 총리는 올 3월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되자마자 가장 먼저 통화한 정상 중 한 명이다. 두 정상은 당시 양국 간 반도체 분야 협력 확대를 논의했다. 윤 당선인은 뤼터 총리에게 “‘미래 산업의 쌀’이라고 불리는 반도체 산업에서 양국 간 협력을 더욱 확대해 나가자”고 제안했고 뤼터 총리는 “양국 간 협력 시너지 효과가 매우 클 것”이라고 화답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4일(현지 시간)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총리 집무실에서 마르크 뤼터 총리와 만나 반도체 분야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사진 제공=삼성전자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4일(현지 시간)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총리 집무실에서 마르크 뤼터 총리와 만나 반도체 분야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사진 제공=삼성전자


이 부회장의 거침없는 반도체 일정은 네덜란드에만 머물지 않았다. 이 부회장은 이튿날인 15일 벨기에로 건너가 유럽 최대 규모의 종합 반도체 연구소인 ‘아이멕’을 방문했다. 그는 이곳에서 뤼크 반 덴 호브 아이멕 CEO와 만나 반도체 분야 최신 기술과 연구개발 방향 등을 논의했다.

삼성 측은 이번 방문이 반도체뿐만 아니라 미래 전략 사업 분야에서 신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전반적 기회를 모색하려는 차원에서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아이멕은 반도체를 중심으로 인공지능(AI), 생명과학·바이오, 미래 에너지 등 여러 분야의 선행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해당 분야 연구 과제를 소개받고 개발 현장을 살펴보기도 했다.

한편 이달 7일 출장길에 오른 이 부회장은 독일·네덜란드·벨기에·프랑스 등을 도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반도체 장비, 전기차용 배터리, 5세대(5G) 이동통신 등에 특화된 전략적 파트너들을 만나 협력 방안을 논의한 뒤 18일 귀국한다.

이재용(오른쪽) 삼성전자 부회장이 14일(현지 시간)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위치한 ASML 본사에서 페터르 베닝크(〃 두 번째)) ASML CEO의 안내를 받고 있다. 사진 제공=삼성전자이재용(오른쪽) 삼성전자 부회장이 14일(현지 시간)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위치한 ASML 본사에서 페터르 베닝크(〃 두 번째)) ASML CEO의 안내를 받고 있다. 사진 제공=삼성전자


진동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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