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피플

"쓰레기통 속 폐품, 발명 이끈 보물이죠"

■ '괴짜 발명가' 김명철 광주과학문화협회 이사

가정 형편 어려운 학생들 위해

실분수 등 100여개 작품 제작

과학 교구재 지원해 부담 줄여

유치원·어린이집서 재능기부도

‘괴짜 발명가’ 김명철 이사가 변기 물이 내려가는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 만든 ‘욕심 없는 컵’으로 실험을 하고 있다. 사진=송영규 선임기자‘괴짜 발명가’ 김명철 이사가 변기 물이 내려가는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 만든 ‘욕심 없는 컵’으로 실험을 하고 있다. 사진=송영규 선임기자




박스에서 뭔가가 계속 나온다. 플라스틱 음료수 병, 탁구공, 잘린 고무호스, 빨대, 즉석 밥 용기…. 하나같이 거리에 굴러다니거나 쓰레기통에 처박힌 폐품들이다. 뒤이어 요구르트 병과 빨대만으로 만든 물건이 등장했다. 입에 대고 불자 ‘뿌욱~뿌우~’ 하고 소리가 나온다. 월드컵 경기 때 자주 들었던 부부젤라 소리다. 생활 속 폐품이 훌륭한 응원 도구로 변신한 것이다. “발명은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내 손 가까이에 닫는 것이 모두 발명의 재료가 될 수 있습니다. 절대 먼 곳에서 찾지 마세요.”



16일 광주광역시 양과동 빛고을농촌테마공원에서 만난 김명철(72) 광주과학문화협회 이사가 말하는 발명의 원칙이다. 김 이사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초등학교 등에서 ‘괴짜 발명가’ 또는 ‘폐품 발명가’로 유명하다. 폐품을 활용해 직접 과학 교구재를 만들면서 얻은 별명들이다. 실제로 100여 개에 달하는 발명품 중 거의 대부분이 폐품으로 만든 것이다. 예외는 특허를 받은 ‘전복 손질 기구’ 단 하나뿐이다.

처음 만든 발명품은 1982년 선보인 ‘찍찍이 학생화’. 그는 “학생들이 신발을 벗고 교실로 들어갈 때 어지럽게 흩어지는 것을 보고 어떻게 하면 가지런히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운동화 안쪽에 ‘찍찍이’를 붙이면 신발을 집을 때 두 짝을 붙어 있게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며 “이 학생화로 전남 학생발명대회에서 창의상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김명철 이사가 폐품을 활용해 발명한 과학 교구재들. 사진=송영규 선임기자김명철 이사가 폐품을 활용해 발명한 과학 교구재들. 사진=송영규 선임기자



과학 원리를 설명하기 위한 교구재도 직접 만든 것들이다. 실을 빨대 구멍으로 넣어 만든 ‘실분수’는 공기의 흐름을 설명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학생들에게 화장실 변기 물이 내려가는 원리를 이해시키기 위해 고안한 ‘욕심 없는 컵’은 빨대와 종이컵만으로 구성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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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명을 많이 하다 보니 필요한 폐품의 양도 많을 수밖에 없다. 쓰레기통이 보일 때마다 달려가 캔, 빨대, 우유 팩 등을 주웠다고 한다. 길거리를 다닐 때나 카페를 갈 때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그는 “요즘은 분리수거가 잘 되기 때문에 예전보다 폐품을 얻기가 어렵지 않다”며 “이러다 보니 집이 쓰레기들로 가득하다”고 웃음을 지었다.

폐품을 활용하는 것은 그의 발명 철학 때문이다. 학생들과 과학 활동을 하다 보면 교구 구입비가 만만치 않다. 여유가 있는 가정의 아이들이야 상관없지만 차상위계층 자녀 등에게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폐품은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도 같이 과학교육을 할 수 있는 든든한 지원군이다. “버려진 것들을 사용하면 돈을 들일 필요가 없잖아요. 모두가 공평하게 과학교육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대부분 안전한 것들입니다. 이보다 좋은 게 없죠.”

김명철 이사가 아이스크림을 쉽게 퍼낼 수 있는 ‘구멍 뚫린 아이스크림 스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송영규 선임기자김명철 이사가 아이스크림을 쉽게 퍼낼 수 있는 ‘구멍 뚫린 아이스크림 스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송영규 선임기자


그는 발명을 하려면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불편한 것을 고쳐 썼을 때 얻는 희열이야말로 발명의 어머니라는 것이다. 불편하다는 것은 자신이 생활 속에서 느끼고 만질 수 있어야 한다.

‘멀리 있으면 결코 발명이 될 수 없다.’ 김 이사의 지론이다. 물건뿐 아니다. 곁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노력하는 것도 넓게 보면 발명의 범주에 속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이면 그것이 물건이든, 사람이든 모두 발명입니다. 자신의 어머니를 행복하게 해주는 말도 발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은 모두 발명품입니다.”

과학 선생님들에게도 할 말이 있다. 김 이사는 발명을 지도할 때 축구 선수 손흥민의 아버지가 어렸을 때 아들을 지도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해줘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는 “축구든, 발명이든 중요한 것은 기본기”라며 “그래야 아빠 찬스, 선생 찬스와 같은 각종 편법이 사라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이사는 2013년 퇴직 이후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등에서 재능 기부를 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자신이 만든 과학 교구재를 이용해 설명할 때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다. 벌써 50회 이상 무료로 재능 기부에 나선 이유다. 장소도 불문이다. 서울 신당초등학교, 비무장지대에 있는 대성마을 역시 그의 발길이 닿았다. 김 이사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강의 요청이 들어온다면 장소·시간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다 해준다”며 “강의를 들은 어린이 중 단 1명만이라도 발명가가 되고 싶다고 한다면 만족한다”고 말했다.


글·사진(광주)=송영규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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