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9일 유류세 인하 폭 확대를 포함한 물가안정대책을 또다시 내놓았다. 기존 20%였던 유류세 인하율을 사상 최대 수준인 30%까지 끌어올린 지 불과 한 달여 만이다. 정책 효과가 바랠 정도로 기름 값이 연일 가파르게 오르며 서민들의 시름이 깊어지자 다급한 정부는 탄력세율 조정 같은 마지막 카드까지 꺼내 들었다. 하지만 유가 급등의 불씨를 제공한 우크라이나 사태가 좀처럼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정부의 고유가 대책이 체감 효과를 얼마나 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유류세 인하 폭을 30%로 끌어올린 5월 첫째 주 전국 주유소 휘발유 평균 판매 가격은 ℓ당 1940원 70전이었다. 하지만 6월 셋째 주 들어 판매 가격은 ℓ당 2089원 90전으로 되레 140원 넘게 올랐다. 정부가 잇따라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정책 효과를 실감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이에 정부는 유류세 인하 폭을 더 높이는 한편 경유 유가연동보조금 지원 기준 단가도 낮추기로 했다. 경유 유가보조금은 기준가격을 넘어서는 경유 가격의 절반을 정부가 지원하는 방식으로 지급된다. 종전 기준(ℓ당 1750원)에 따른 보조금이 175원가량인데 이번 조정(ℓ당 1700원)으로 보조금은 25원 정도 더 늘어난다.
정부는 대중교통 이용을 독려하기 위해 대중교통비를 신용카드로 결제하는 경우 소득공제율도 확대할 방침이다. 신용카드 등 소득공제는 총급여의 25%를 초과한 사용액에 ‘공제율’을 곱해 액수를 구한다. 정부는 기존 대중교통비 몫으로 적용되던 공제율 40%를 80%까지 높이기로 했다. 대중교통비로 80만 원을 지출했다면 공제액은 64만 원에서 96만 원으로 늘어나게 된다. 이 밖에 유가 상승에 따른 항공료 인상 압력을 낮추기 위해 국내선 항공유의 할당관세를 3%에서 0%로 한시 적용한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농축산물과 필수식품에 대해서는 가격 상승 품목 중심으로 시장 동향을 모니터링하고 비축 물자 방출, 긴급수입 등 수급 관리와 가격 할인 등을 통한 적기 대응으로 시장을 안정화하겠다"면서 "할당관세 적용 품목을 확대하는 등 수급 안정화를 위한 추가 조치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치솟는 국제 유가를 고려하면 이번 대책 역시 한계가 분명하다. 일례로 국내 주유소 휘발유 가격은 2주가량의 시차를 두고 선행 지표인 국제 유가를 따라가는 경향을 보인다. 국제 유가(두바이유 기준)는 17일 배럴당 116.29달러로 2주 전(112.12달러)보다 뛰어오르며 국내 휘발유 가격 인상 압력이 더 커졌다. 유류세 추가 인하로 ℓ당 50원가량 낮아지더라도 국제 유가 오름폭을 상쇄하기는 역부족이라는 얘기다. 특히 우크라이나 사태 등 유가 급등을 촉발한 근본 원인이 해소되지 않는 한 정부 대책은 ‘대증요법’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많다.
설상가상으로 정부가 내놓을 수 있는 대책도 바닥을 보이고 있다. 현재 관련 법을 고치지 않고 정부가 감면할 수 있는 유류세 한도는 30%(탄력세율 조정 시 37%)까지다. 여당 의원이 유류세를 최대 100%까지 감면하는 법안을 발의하기는 했지만 이 역시 ‘만능키’는 아니다. 유류세 인하 폭을 높일수록 그 혜택이 고소득층에 집중되며 ‘역진성’ 논란을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18년 유류세 15% 인하 당시 소득 상위 10%는 15만 9000원의 혜택을 본 반면 소득 하위 10%의 경우 1만 5000원에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