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경제·마켓

[실리콘밸리 르포]임금 치솟자 식당선 5% '할증료'…고물가에 "숨만 쉬어도 타격"

■물가 악명 높은 실리콘밸리 새너제이 가보니

소비자에 별도 추가요금 부과…'숨은 인플레' 곳곳에

기름값도 7弗 넘어 6弗대 코스트코 주유소 장사진

월세 등 전방위 폭등…1인당 月생활비 2년새 560만원↑

이달 초 실리콘밸리의 한 햄버거 체인점이 시급 최대 22달러를 내걸며 직원들을 모집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정혜진 특파원이달 초 실리콘밸리의 한 햄버거 체인점이 시급 최대 22달러를 내걸며 직원들을 모집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정혜진 특파원




19일(현지 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 팰로앨토 지역의 한 식당가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실리콘밸리=정혜진 특파원19일(현지 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 팰로앨토 지역의 한 식당가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실리콘밸리=정혜진 특파원


19일(현지 시간) 미국 실리콘밸리의 중심지인 새너제이 산타나로 거리. 상점들 사이로 음식점이 즐비한 이곳의 한 식당에서 식사를 마친 뒤 종업원이 가져다준 영수증 내역을 확인하던 중 못 보던 항목이 눈에 띄었다. 전체 금액의 5%가량을 차지하는 ‘임금 상승 할증료(surcharge)’다. 식당 측에 묻자 새너제이시가 일괄적으로 부과하는 9.13%의 판매세와는 별도로 식당이 인플레이션 부담을 나누기 위해 자체적으로 책정한 추가 요금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한 종업원은 “높은 인플레이션 탓에 최근 시급을 한 차례 인상하면서 고객들에게 별도의 추가 요금을 부과하게 됐다”면서 “월세 가격이 너무 뛰어 왕복 한두 시간 거리에서 출퇴근할 수 있는 직원을 구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보니 식당을 운영하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새너제이의 최저 시급은 16.20달러로 책정돼 있지만 대다수의 식당은 시간당 20~22달러를 지급해야 직원을 구할 수 있는 실정이다.




미국 실리콘밸리 새너제이의 한 식당에서 소상공인 할증료 5%를 부과한 영수증 /실리콘밸리=정혜진특파원미국 실리콘밸리 새너제이의 한 식당에서 소상공인 할증료 5%를 부과한 영수증 /실리콘밸리=정혜진특파원


새너제이의 한 식당이 20%의 기본 서비스 할증료와 새너제이 고용주 관련 요금(1%)을 청구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정혜진 특파원새너제이의 한 식당이 20%의 기본 서비스 할증료와 새너제이 고용주 관련 요금(1%)을 청구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정혜진 특파원


산타나로의 또 다른 식당도 ‘소상공인 할증료(small business surcharge)’라는 명목으로 전체 금액의 5%에 해당하는 비용을 소비자에게 부과하고 있다. 치솟는 임금과 유가·월세 등을 이유로 이처럼 저마다 부과하는 별도의 할증료는 이 지역의 ‘숨은’ 인플레이션 요인으로 작용한다. 실리콘밸리가 있는 베이에어리어에 6년째 거주하는 한인 직장인 김 모 씨는 “추가 요금이 곳곳에 지뢰밭처럼 있는 상황”이라며 “추가 요금이나 (팁 대신 부과하는) 20%의 서비스 요금(service charge)을 기본으로 부과하는 곳을 피해 다니기도 쉽지 않아 외식이 두려울 지경”이라고 팍팍해진 가계를 하소연했다.

미국 전역이 40년 만에 최악의 인플레이션으로 몸살을 앓는 가운데 살인적 물가로 일찌감치 악명 높았던 실리콘밸리의 인플레이션은 심각한 수준이다. 생활의 필수 요소인 월세와 휘발유 가격, 중고차 가격을 비롯해 장바구니 가격까지 전방위적으로 치솟아 “숨만 쉬어도 타격을 입는다”는 말이 나올 지경이다.



미국자동차협회(AAA)에 따르면 이날 기준 샌프란시스코의 평균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6.5달러(약 8380원)를 넘어섰다. 미국 전역의 평균 휘발유 가격(4.9달러)과 비교하면 무려 32%나 높은 수준이다. 갤런당 가격이 7달러를 돌파한 주유소도 흔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휘발유 가격을 6달러가량으로 책정한 대형 할인 마트 코스트코 주유소에는 개장 시간부터 차량이 장사진을 이룬다. 이 지역의 부동산 중개인 사라 센 씨는 “매일 도로에다 돈을 줄줄 흘리는 느낌”이라며 “일을 하려고 차를 몰고 나오는데 일주일에 두 번씩 한 시간 넘게 주유 대기 줄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정작 일할 시간을 빼앗기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한 시간을 기다리면 10달러가량을 아낄 수 있어 번번이 시간을 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끄는 그가 내민 영수증에는 113달러(약 14만 원)가 찍혀 있었다. 멕시코 국경과 접한 캘리포니아 남부 주민들의 경우 갤런당 휘발유 가격이 2달러 이상 저렴한 멕시코로 원정 주유를 가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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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류·우유·계란·공산품 등의 가격이 일제히 상승하면서 장바구니 물가도 숨통을 조이는 요소다. 베이에어리어 인근의 한 직장인은 “이전에는 100달러 선에서 장을 봤다면 이제는 30~40달러는 더 나오는 느낌”이라며 “기본 식재료를 제외한 스낵류·술·커피 등 기호 식품에는 손이 잘 안 간다”고 전했다.

/사진 제공=미국자동차협회(AAA)/사진 제공=미국자동차협회(AAA)


샌프란시스코크로니클이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를 토대로 분석한 바에 따르면 4월 기준 베이에어리어에서 교통비·헬스케어·식료품 등을 포함한 1인당 평균 기본 생활 비용은 팬데믹 초기였던 2020년 4월 대비 4400달러(약 570만 원)가량 증가했다. 품목별로는 교통비가 1831달러로 가장 많이 늘었고 이어 식음료(1032달러), 주거(828달러)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휘발유 가격이 전년 대비 43.5%로 가장 크게 올랐고 이어 가정용 천연가스(23.4%), 중고차 및 중고 트럭(22.3%), 육류·유제품(19.3%)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이 오름세의 끝이 안 보인다는 것이다. 비영리 공익단체인 컨슈머워치도그의 제이미 코트 회장은 “베이에어리어의 주거 비용이 얼마나 높은지를 고려할 때 감당 불가능한 인플레이션 위기의 진앙지”라며 “예전에도 이 지역의 물가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었지만 이 현상이 훨씬 심해지고 있다”고 평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테크 업계가 속속 실적 전망을 낮추고 비용 감축의 일환으로 채용 동결 및 정리해고에 나서고 있다는 점은 이 지역 경제에 대한 심리적 불안 요인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최근 메타와 우버·로빈후드 등 실리콘밸리의 주요 기업들은 인플레이션 압력과 경기 대응 등을 이유로 신규 채용 축소와 감원 방침을 속속 발표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정혜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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