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생활

태양광 무리한 확장에 자금난…선급금 준 운용사는 공사 '무관심'

■신재생 과속 후폭풍…'이지스 사고' 왜 터졌나

레즐러 文정부서 급속 성장…매출 1000억 넘고 대통령 표창도

정부 ESS 보조금 지원 중단·인허가 지연 겹쳐 재무건전성 악화

이지스리얼 개발사 '관리 소홀' 지적…'제2 레즐러' 우려 확산


이지스리얼에셋투자운용의 태양광 펀드 사고를 두고 업계에서는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정부 기간 동안 급속하게 진행된 신재생에너지 정책과 무분별하게 뿌려진 지원금을 노린 태양광발전 개발사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자산운용사들은 이들과 손잡고 연 4%대의 ‘안정적인 수익률’을 제시하며 기관투자가들을 대상으로 사모펀드를 찍어 냈고 이 같은 자금은 다시 전국적인 태양광발전 개발 사업에 뿌려졌다. 정부 보조금에 기대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한 중소 개발사 중 한 곳인 레즐러가 재무 위기에 봉착하면서 관련 펀드의 태양광발전 사업이 좌초 위기를 맞았고 해당 펀드는 수백억 원대의 펀드 손실을 입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추가 부실 펀드가 발생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리스크 관리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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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이지스리얼에셋의 태양광발전소 펀드 사고는 △정책에 기댄 중소 태양광 개발사의 과도한 사업 확장 △신재생에너지 정책 과속으로 인한 무리한 투자 △자산운용사의 관리 소홀이 겹쳐 일어났다는 분석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의 100% 손자회사인 이지스리얼에셋이 설정한 태양광 펀드는 총 4개로 현재까지 각각 2020년 6월과 12월에 설정된 2호와 3호에서 사고가 확인됐다. 케이프투자증권이 판매사인 4호의 경우 그 이후인 2021년 8월에 설정됐으며 ‘아직까지’는 문제가 확인되지 않았다. 이들 펀드의 수익자는 NH농협생명·한화생명 등 보험사들이 다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개별 펀드의 규모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으나 4개 펀드의 총설정액이 1768억 원인 점을 봤을 때 펀드당 300억~400억 원대로 추정된다.



이지스리얼에셋은 설정한 대부분의 태양광발전소 개발을 레즐러에 맡긴 것으로 알려졌다. 2013년 설립된 레즐러는 문재인 정부 들어 몸집을 급격히 키웠다. 2016년만 해도 매출액이 159억 원에 불과했으나 2020년에는 1000억 원을 넘기며 대전시로부터 ‘매출의 탑’ 상을 받았다. 레즐러는 2019년 중소기업인대회에서 문재인 대통령 표창을, ‘2020 국가 에너지 전환 우수 사례 공모 대회’에서 기업 부문 대상을 받는 등 촉망받는 태양광 개발사였다. 그러나 지난해 매출은 195억 원으로 5분의 1 토막 났다. 순손실만도 460억 원에 달했다. 현대회계법인은 “2021년 말 기준 유동자산 485억 5000만 원, 유동부채 981억 3600만 원으로 유동부채가 유동자산을 495억 8600만 원 초과했다”며 “계속기업으로서 불확실성이 크고 회사 매출을 통한 재무 개선 및 유동성 확보 계획에 대한 적합한 감사 증거를 입수하지 못했다”며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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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무 위기에 휩싸인 레즐러는 ‘이지스 태양광 펀드’ 2호와 3호의 발전소 공사를 이달 말까지 마무리하기로 했으나 이를 이행하지 못한 것으로 이지스리얼에셋 측은 확인했다. 이지스리얼에셋의 한 관계자는 “공사비가 아닌 다른 곳에 쓰였을 것이라고 추측만 할 뿐”이라며 선급금 행방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서울경제는 레즐러 측에 공사가 진행되지 않은 이유, 선급금의 행방, 또 다른 자산운용사로부터 선급금을 받았는지 등을 수차례 문의했지만 “특별히 밝힐 입장이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업계는 레즐러의 재무 건전성 악화는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지원 정책을 믿고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한 결과라고 보고 있다. 레즐러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인해 약 2년 정도 인허가 지연, 태양광발전 사업에서 비중이 큰 에너지저장장치(ESS) 사업에 대한 갑작스러운 정부 지원 중단 등으로 예상하지 못한 심각한 경영난을 겪게 됐다”고 밝혔다. 태양광 개발 업계 관계자는 “레즐러는 공격적으로 땅을 매입하는 것으로 유명했다”며 “공사 선급금을 받고 이를 다른 부지 매입에 쓰다가 인허가가 늦게 나면서 자금 상황이 악화됐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2017년 태양광발전 전력 저장 장치인 ESS 설치에 대해 파격적인 보조금을 주며 설치를 장려했으나 2021년 신규 설치한 ESS에 대한 보조금을 끊기로 했다. 보조금을 노린 태양광 개발사들의 ESS 설치가 과도하게 급증했기 때문이다.

자산운용사의 관리 소홀도 문제로 지적된다. 선급금을 50%나 지급하고도 공사 진척 상황을 제때 확인하지 않았다. 레즐러의 감사 보고서 의견 거절은 올 4월 12일 공시됐다. 그러나 이지스리얼에셋은 한 달이 지난 5월에야 레즐러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한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태양광발전소 공사가 비교적 소규모이고 공사 기간이 짧다고는 하지만 선급금을 50%나 지급하고도 진척 상황을 살피지 않은 것은 운용사에 책임 소재가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다만 책임을 온전히 자산운용사에 돌릴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수익자도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판매사는 344억 원 규모의 ‘이지스리얼에셋솔라전문투자형사모투자신탁 제4호’에 대해 ‘부정적 투자 의견’을 냈는데도 수익자 측이 태양광발전소 부지와 개발사로 레즐러를 지정해 펀드 판매를 요청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자산운용 업계도 덩달아 긴장한 분위기다. 여러 운용사들이 신재생에너지 등 태양광발전소 사모펀드를 운용하고 있어서다. 한 자산운용 업계 관계자는 “규모와 국내·해외 투자 정도만 다를 뿐 주요 자산운용사 상당수가 신재생에너지 발전소 사모펀드를 운용 중”이라며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 자체 점검에 나선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제2의 레즐러가 나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태양광 개발사 등 건설 업체가 2000개를 넘어서는 만큼 재무상 어려움을 겪는 업체가 레즐러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에너지공단에 따르면 2020년 신재생에너지 개발사 등 건설 업체 수는 2169개인데 이 중 2084개(96.1%)가 태양광 건설 업체다. 매출 비중도 압도적이다. 전체 신재생에너지 건설 업체 매출은 7조 390억 원인데 태양광 건설 업체는 5조 7653억 원(81.9%)이다.

이지스리얼에셋 관계자는 “시공사의 공사 미실행 위험을 대비하고자 사전에 보증보험에 가입하는 등 안전장치를 마련했고 펀드 만기가 길게 남아 펀드 정상화가 가능하다”며 “손실 여부를 판단하기 이르고 투자자 보호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서종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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