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트릴레마에 빠진 韓

한재준 인하대 글로벌금융학과 교수

원화 평가 절하 85%는 强달러 탓

환율 잡으려면 금리 올려야 하는데

인상땐 '1900조' 가계빚에 큰 부담

정부의 정교한 정책 대응 필요





원·달러 환율이 23일 종가 기준으로 1300원을 넘어섰다. 환율이 1300원을 넘어선 것은 외환위기(1997년), 닷컴 버블 붕괴(2001년), 그리고 글로벌 금융위기(2009년) 등 세 차례에 불과했다. 코로나19 사태로 금융시장이 요동쳤던 2020년 3월 최고치도 1286원이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큰 폭의 절하다.



평가 절하(환율 상승)의 주요 요인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달러화 강세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미 달러의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화지수(DXY)가 104.2로 지난해 6월 말(92.4) 대비 약 13% 상승했다. 같은 기간 원·달러 환율은 15.2% 상승했다. 즉 원·달러 환율 절하의 85%는 강(强)달러에 기인한다. 미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인상함에 따라 글로벌 시장에서 강달러가 뚜렷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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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달러 상승세보다 원화 평가 절하 폭이 더 큰 것도 주목할 점이다. 나머지 15%의 요인은 무엇일까. 몇 가지를 상정해볼 수 있다. 첫째, 무역수지의 적자 전환이다. 올해 들어 6월 말까지 무역수지 적자 폭이 155억 달러다. 주요 원인은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원유·가스 등 에너지 가격과 국제 곡물 가격이 급등하면서 수입액이 급증한 탓이다. 둘째, 외국인투자가들의 주식시장 이탈과 해외투자 증가에 따른 외환시장에서의 수급 불균형이다. 외국인투자가들은 6월 하순까지 주식시장에서 15조 원을 순매도하면서 달러화 환전에 나섰고 국내 투자자들도 일조했다. 해외 기업 인수나 공장 증설을 위해 국내 기업들이 달러 매수에 나섰고 서학개미와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증가도 달러 매수세를 부추겼다. 셋째, 디지털 전환 등 글로벌 산업구조 재편 과정에서 수출 주도형 한국 경제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문 제기 가능성이다.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이 우선적 이슈겠지만 높은 가계부채와 국가채무가 이슈가 될 수도 있다. 지금 옆 나라 일본은 펀더멘털에 대한 의구심이 부각되면서 슈퍼 엔저라는 딜레마에 빠졌다. 기업들의 디지털 전환 실패에다 아베노믹스라는 양적완화로 국가채무가 국내총생산(GDP)의 2.5배까지 확대되면서 환율 방어를 위한 금리 인상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한국의 경우에는 펀더멘털 이슈가 부각되지는 않고 있다. 국가 부도율 지표인 신용부도스와프(CDS) 금리가 아직까지는 안정적이다. 외환보유액이 4477억 달러(5월 말)로 충분하고 대외적으로 순채권국가(4257억 달러·3월 말)로 바뀌어 있다. 환율이 오를 경우 물가 상승 우려가 있지만 대외 자산은 더 늘어날 것이다.

그런데 환율 상승은 인플레이션 압력을 가중시킬 수밖에 없다. 국제 유가가 상승세인데 환율도 오른다면 소비자물가 상승은 가팔라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환율을 잡으려면 금리 인상이 불가피하다. 소위 환율·금리·물가 간 트릴레마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상을 예고하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금리 인상은 1900조 원에 달하는 가계부채에는 심각한 짐이다. 이 때문에 정부의 정교한 정책 대응이 매우 긴요하다.

정부의 지나친 시장 개입이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경제 주체들의 과도한 쏠림 현상은 자제시켜야 한다. 통화·외환 당국의 금리 조정과 외환시장에서의 스무딩 오퍼레이션, 시장 참가자에 대한 적절한 시그널링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시장 참가자들의 잘못된 시그널링 해석과 쏠림 현상, 과도한 정부의 개입으로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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