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기업 투자 멈춘 불황, ‘환란’ 수준 위기 맞아야 정신 차릴 건가


세계 배터리 업계에서 선두를 다투는 LG에너지솔루션이 당초 계획했던 1조 7000억 원 규모의 미국 애리조나주 신규 공장 투자를 재검토하기로 했다. 인플레이션으로 인건비·자재 등 건설 비용이 급상승하고 경기 침체로 재고가 늘자 투자 보류라는 고육지책을 꺼낸 것이다. 불황의 골이 깊어지며 기업들의 경영전략이 통째로 바뀌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7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전망치는 92.6으로 1년 6개월 만에 최저치로 곤두박질쳤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전력 시장과 에너지 산업 구조 변화의 압력으로 쇼크에 가까운 우려가 있다”며 위기 데시벨을 높였다.

거시 경제 환경은 급속도로 나빠지고 있다. 한국은행이 내놓은 6월 기대 인플레이션은 3.9%로 10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다. 다음 달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0.50%포인트 올리는 ‘빅스텝’을 단행할 경우 가계·기업 전반에 부실의 회오리가 몰아칠 것이다. 미국이 다음 달 긴축의 고삐를 더 조이면 세계 경제는 실물·금융 양 축에서 시계 제로 국면에 빠질 수 있다. 투자 대가인 짐 로저스는 “이번 불황은 1970년대보다 더 나쁠 것”이라며 “내 생애 최악의 경기 침체가 온다”고 경고했다.



이런데도 정부의 대응은 미흡하고 여야 정치권은 되레 권력 싸움에 빠져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거대 야당은 새 정부 발목 잡기를 계속하는 한편 이재명 의원의 당 대표 출마 등을 놓고 계파 싸움을 벌이고 있다. 여당은 위기의 해법을 뒷받침하기는커녕 당권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자기 정치’의 늪에 빠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에게서는 경제 위기 해법 발언을 듣기 어렵다. 정부는 위기 대응 수위를 높여야 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직후처럼 대통령이 주재하는 비상경제대책회의를 만들고 ‘경제 워룸’을 가동해 기업 투자 등 내수 촉진책을 꺼내야 한다. 채권시장안정기금 등 시장 안정 프로그램도 선제적으로 마련해야 할 것이다. 위기의 불길이 환란 수준으로 번진 후에야 수습책을 찾는다면 몇 배의 희생이 뒤따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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