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여명] 김건희 여사의 패션외교를 보는 자세

이연선 디지털뉴스룸 디지털편집부장

영부인 옷은 그 나라의 국격 의미

등장할 때마다 경쟁적 언론보도

가십성 뉴스 흥미 자극할수 있지만

정작 중요한 뉴스 눈가림해선 안돼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29일(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 만다린 오리엔탈 리츠호텔에서 열린 동포 만찬간담회에서 국기에 경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29일(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 만다린 오리엔탈 리츠호텔에서 열린 동포 만찬간담회에서 국기에 경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건희 여사, 옷깃엔 항상 '이 배지' 달았다.’

박지원 “김건희 ‘팔 흔들흔들’ 하도 뭐라 해 주눅 든 듯.”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놓고 온라인이 시끌시끌하다. 새로운 옷을 입고 등장할 때마다, 그녀의 행동이나 발언이 공개될 때마다 모든 언론이 경쟁적으로 보도하다 보니 정작 다자 외교 무대에 처음 오른 윤 대통령과 나토 회의 내용에 대한 기사는 김 여사가 갈아입은 원피스 수에 밀려도 한참 밀리는 모습이다.



한 국가 영부인의 복장과 태도가 그 나라의 국격을 보여준다는 면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우리나라 외에 다른 국가들에서도 퍼스트 레이디의 패션과 그 브랜드는 화제가 되고는 한다. 오죽하면 ‘영부인은 옷으로 말한다’라고 할까. 다만 이들은 가십성 보도 수준을 넘어 그 옷이 선택된 배경과 의미, 정치적인 메시지에 주목한다. 단순히 온라인 커뮤니티 반응을 취합하는 국내 보도 수준을 뛰어넘는 것이다. 김 여사의 패션 기사가 과연 기사로서 가치가 있는지 확신하기 어려운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관련기사



그녀의 패션에 대한 보도는 대통령 선거 이전부터 유별나게 많은 편이었다. 그녀가 신었던 3만 원짜리 슬리퍼가 완판되면서 ‘완판녀 김건희’ 기사가 각 언론사마다 가장 높은 조회 수를 기록했고 디올 셔츠를 입고 같은 브랜드 가방을 든 그녀의 모습은 관련 상품 가격과 품절 소식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녀가 입은 옷과 제품을 사재기하는 움직임이 나타나는가 하면 그녀의 ‘돌려 막기’ 식 코디까지 화제에 올랐다.

그녀의 패션에 대한 뉴스가 흥미로울 수는 있지만 정작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뉴스들을 가린다면 우리는 이 문제를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 이번 나토 정상회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서방과 러시아 사이에서 오랜 기간 중립을 지켜온 스웨덴과 핀란드가 나토 가입을 공식 승인 받는 엄청난 결정이 있었다는 점, 5년 만에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한 공조를 외쳤지만 한일 양자 회담은 결국 무산된 점 등 중요한 결정과 그 결정이 내포한 의미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주요 뉴스들은 김 여사의 화려한 사진들 뒤로 밀려버렸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으로 세계 정세가 급변하고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 지형이 흔들리고 있는 이 불안한 상황에서 말이다.

김 여사의 지금 같은 ‘내조’ 행보가 계속되는 한 그녀의 패션에 대한 화제성 기사는 계속 쏟아질 것이다. 언론들의 경쟁적인 보도 행태에 독자들의 시선 역시 따라다닐 확률이 높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오는 윤 대통령이 마주하는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다. 물가가 급등하고 금리 인상에 따라 기업과 서민들의 시름이 깊어지는 상황에서 그녀의 옷과 가방을 따라다니는 일은 너무 한가하다. 김 여사 역시 대중의 관심을 불필요하게 모으면서 논란을 자초하지 않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 대가로 얻은 것은 출범한 지 고작 50여일 밖에 안 된 윤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해 국민들의 부정적인 평가가 커지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국내 언론 역시 반성이 필요하다. 조회 수를 높이고 인기 기사에 랭킹되고자 폭주를 멈추지 못하는 모습은 뉴스의 주목도를 높이는 데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언론의 전문성과 신뢰도를 심각하게 갉아먹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지난 20여년간 언론이 네이버 등 포털 사이트 뉴스 장사에 안주하면서 자극적인 뉴스로 혐오를 키우는 소모적인 뉴스 생태계는 더욱 공고해지는 모습이다. 과자를 찍어내듯 똑같은 내용을 쏟아내는 언론과 호불호를 넘어 원색적인 비난과 조롱을 멈추지 않는 댓글 창을 보고 있자면 도대체 대한민국의 언론과 독자들은 이런 갈등과 대립을 통해 무엇을 얻는 것인지 걱정스럽다.

이연선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