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다른 사람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다가 재판에 넘겨진 사례가 문재인 정부 때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평균 기소 건수가 박근혜 정부 시절보다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윤석열 정부 출범과 맞물려 검찰이 이전 정권의 비위에 대한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는 만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기소되는 사례가 늘어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1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2017년부터 올 5월까지 직권남용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사례는 총 167건에 이른다. 2020년 5월(9건)까지 수치를 제외하고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해마다 31.6건의 사건이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됐다. 이는 박근혜 전 대통령 재임 시기인 2013~2016년 사이 연평균 기소 건수(16.5건)보다 두 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직권남용은 형법 제123조에 명시된 죄명이다.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다른 이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 5년 이하 징역 또는 10년 이하 자격정지, 1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다만 2012년부터 2014년에는 한해 11~18건가량이 기소되면서 한때 사문화된 게 아니냐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2015년과 2016년 각각 20건, 22건에서 2017년에는 28건으로 늘면서 증가세로 바뀌었다. 2018년에는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된 사건만 48건에 달했다. 2019년에 소폭 감소하기는 했으나 여전히 40건을 기록했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문재인 정부 초기 국정 농단 등 수사에 나서면서 직권남용 혐의에 따른 기소가 크게 늘었다”며 “직권남용 혐의의 경우 입증 자체가 쉽지 않아 적용도 신중해야 하지만 고위 관료 등에게 뇌물죄보다 혐의 적용이 쉬워 수사 당시 전가의 보도처럼 쓴 경향이 없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검찰 지휘부 교체가 완료된 만큼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한 기소가 크게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서울중앙지검과 서울동부지검 등 전 정권을 겨냥한 각종 수사가 본궤도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는 원전 정책 폐기를 둘러싼 이른바 ‘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 수사가 한창이다.
일각에서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이 9월 시행돼 검찰 수사 영역이 부패·경제범죄로 축소되더라도 현 검찰 수사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공무원 뇌물죄가 부패 범죄에 속하는 만큼 검찰이 혐의를 규명해 나가는 과정에서 좁게는 부정 처사 후 수뢰죄나 넓게는 직권남용까지 관련성에 따라 수사를 확대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양홍석 법무법인 이공 변호사는 “공무원 뇌물 범죄는 대체로 돈을 받고 무엇을 해줬는지를 밝히는 게 일반적이라 부정 처사 후 수뢰죄로 수사가 확대될 수 있다”며 “무엇을 했는지가 부당한 업무 처리를 한 것으로 볼 수도 있어 충분히 직권남용 수사도 동시에 가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검찰 사정에 밝은 한 법조계 관계자도 “그동안 수사에서도 공무원 뇌물죄의 경우 부정 처사 후 수뢰죄나 직권남용 혐의를 함께 들여다보는 사례가 많았다”며 “다만 검수완박이 시행되는 9월 이후에는 뇌물 혐의 입증을 못해 직권남용 혐의만 있다고 판단될 경우 사건을 경찰로 이첩해 수사를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