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이 코로나19 이후 완화했던 산업은행의 유동성 규제를 단계적으로 정상화한다. 코로나19 기간 정책금융의 일환으로 진행됐던 ‘민생·금융안정 패키지 프로그램’ 등 산업은행의 대규모 기업지원이 사실상 축소된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규제 정상화의 의미가 있지만 경기 침체가 우려되는 시점에서 적극적인 정책 자금 공급을 제약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금융감독원은 은행의 순안정자금조달비율(NSFR) 경영지도비율 준수 의무를 2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정상화하기로 했다. 내년 말까지만 NSFR 100% 준수 의무를 면제하는 대신 최소 유지 비율을 올해 하반기 85%에서 내년 상반기 90%, 하반기 95% 등 총 3단계에 걸쳐 점진적으로 높이기로 했다.
NSFR은 은행이 자금을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는지를 평가하는 유동성 지표다. 금융 당국은 은행업감독규정에 따라 은행의 NSFR을 100% 이상으로 유지하도록 하고 있다. 금융 당국은 2020년 4월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금융 규제 유연화 방안’으로 NSFR 규제를 완화했으며 이번 조치를 통해 규제 완화 이전으로 돌려놓아 은행의 건전성을 확보할 방침이다.
현재 NSFR을 지키지 못한 곳은 산업은행 한 곳뿐이다. 따라서 이번 조치는 사실상 산업은행에만 해당된다. 산업은행의 경우 코로나19 기간 ‘민생·금융안정 패키지 프로그램’을 이행하면서 산업금융채권을 발행하며 NSFR 비율을 유지하지 못했다. NSFR 산출 시 산금채는 예수금 등과 비교해 안정 자금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비율이 낮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0년 1분기 말 102.8%였던 산업은행 NSFR은 코로나19 이후 계속 100%를 넘지 못했다. 최근에는 지난해 3분기 97.4%, 4분기 96.4%, 올해 1분기 94.7% 등 3개 분기 연속 하락하기도 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2년간 지속된 규제 유연화 조치 속 대출 규모 증가, 잠재 부실 대비 등을 감안하면 점진적으로 규제 정상화를 시작해야 한다”며 “다만 산업은행은 자금 조달처가 산금채 위주인 만큼 NSFR을 정상화하려면 산금채 만기를 조절해야 하고 산금채를 장기로 발행하면 조달 금리가 오르게 되니 단계적 정상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비율 강화를 위한 예수금 증대가 사실상 불가능한 산업은행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금융 당국의 정상화 결정이 너무 빠른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NSFR 정상화를 위해 그간 기업들에 공급했던 정책 자금 규모가 축소될 수 있는 데다 장기적으로 산금채 발행 조절로 시중은행 금리 인상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 당국이 산업은행의 NSFR 규제 의무를 유예했던 의도 자체가 정책 자금을 적기에 공급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며 “산은이 NSFR 규제를 이행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어 보이지만 향후 경기가 또 어려워지면 산은의 적극적 자금 공급에 제약 요건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산업은행이 2020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집행한 정책 자금 규모는 약 60조 원에 달한다. 시장에서는 NSFR을 규제 수준에 맞추기 위해 산금채를 장기로 돌리는 부작용을 우려한다. 금융권 관계자는 “산금채 금리가 오르면 은행채 금리가 오르고, 은행채 금리가 오르면 은행채를 벤치마킹하는 대출금리가 오르는 등 시장에 불필요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