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무죄추정의 원칙 되새겨야

■정혁진 법무법인 경문 대표 변호사

정혁진 법무법인 경문 대표변호사정혁진 법무법인 경문 대표변호사




실체적 진실과 법적 진실이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판사도 인간인 이상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전지전능한 판사는 존재할 수 없다. 진실은 오로지 당사자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공무원이 사망했다. 그런데 그 사망 지점이 북한 바다였다. 어떻게 그는 북한으로 가게 됐을까. 자진 월북인지 사고인지는 알 수 없다. 당사자가 사망했기 때문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이는 고인의 사망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유족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내가 있고 아들딸이 있다. 유족들에게는 가장의 사망보다 더 큰 문제가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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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형사법적 문제다. ‘월북’은 국가보안법상의 잠입·탈출죄에 해당할 수 있다(제6조). 그런데 당사자가 사망했으므로 기소돼 처벌받지는 않는다. 그러나 여기서 끝날 문제가 아니다. 고인이 공무원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인은 생명과 신체에 대한 고도의 위험을 무릅쓰고 직무를 수행하는 ‘위험 직무 공무원’이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고인은 국가유공자법상 ‘순직 공무원’이고 유족은 해당 법률에 따른 예우를 받게 된다(제4조 제1항 제14호). 또한 ‘위험 직무 순직 공무원’으로서 유족에게 공무원재해보상법에 따른 급여가 지급된다(제3조 제1항 제4호). 가장은 사망했지만 유족들에게는 나라를 위해 순직한 공무원의 유족이라는 명예와 보상이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월북’이라면 문제는 전혀 달라진다. 공무원의 자해 행위가 원인이 돼 사망한 경우 공무상 재해로 보지 않는다(공무원재해보상법 제4조 제2항). 다시 말해 ‘월북’은 단순히 정치적인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고인과 유족의 명예와 경제적 보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법적 문제가 되는 것이다.

문제를 어떻게 판단해야 할 것인가. 국내 법이 제시하고 있는 기준에 따를 수밖에 없다. 불완전한 사람들이 모여 사회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분쟁은 불가피하다. 이 같은 다툼이 있을 때 일정한 기준으로 합의된 게 법이다. 그런데 국내 법은 이러한 문제에 대해 어떠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가.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에게 유리하도록 판단하라(in dubio pro reo)’는 것이다. 피고인은 법원에서 유죄로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돼야 한다.

법관은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로 확신할 수 있을 때만 범죄로 인정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함부로 사람을 범죄자로 몰아서는 안 된다. 이 같은 원칙을 이번 사건에 대입해보면, 월북을 했다고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확실한 사실이 입증되지 않는 이상 함부로 고인을 월북자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 게다가 이는 고인과 유족들의 명예와 배상에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다. 그런데 과연 그와 같은 입증이 이뤄졌다고 할 수 있는가. 동기와 수단, 북한 대응 등 오히려 이상한 점이 너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고인의 월북을 주장하려 한다면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을 해야 한다. 입증책임은 주장하는 사람이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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