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여명] 검은 코끼리가 우리 곁에 있다

신경립 국제부장

푸틴의 우크라 침략은 예고된 재앙

이제 '亞의 검은 코끼리' 직면할때

中의 대만 침공, 현실성 띠기 시작

韓, 양안 문제에 철저히 대비해야





재앙은 어떻게 닥쳐오는가. 미국의 문호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그 답을 단 세 단어로 절묘하게 표현해냈다.



“서서히, 그러다가 갑자기(Gradually, then suddenly).”

헤밍웨이의 소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등장 인물이 왜 파산하게 됐느냐는 질문에 한 말이다.

파산뿐이 아니다. 대부분의 위기는 서서히 징후를 드러내다 어느 순간부터는 손쓸 수 없을 정도로 급격히 전개된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지는 일은 드물다. 그럼에도 우리는 다가올 비극의 징후들을 대수롭지 않게 흘려보내거나 ‘설마’ 하는 마음에 외면하고는 한다. ‘아차’ 했을 때는 이미 상황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된 후다. 그렇게 ‘갑자기’ 일은 벌어진다.



5개월째 계속되는 우크라이나 전쟁 역시 느닷없이 벌어진 일이 아니었다. 전쟁 발발 이틀 전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한 “블라디미르 푸틴의 계획은 줄곧(all along)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것이었다”는 말처럼 2014년 푸틴이 크름반도를 강제 병합한 순간부터 침략은 예고된 일이었다. 국제 협정을 위반하고 이웃 나라 영토를 침범한 푸틴을 서방은 솜방망이 제재만 가하고는 사실상 아무런 대응 없이 내버려뒀다.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분리주의 반군의 내전이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8년 동안 계속되는 와중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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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지난해 말 러시아가 10만 이상의 병력을 국경에 배치했을 때도 경제적으로 잃을 것이 많은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을 반신반의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푸틴의 야욕이 일으킨 우크라이나 전쟁은 유럽의 ‘검은 코끼리’였다.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검은 백조(black swan)’와 모두가 잘못된 것을 알지만 누구도 얘기하지 않는 커다란 문제를 뜻하는 ‘방 안의 코끼리(elephant in the room)’가 합쳐진,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지만 모두가 모른 척하고 해결하지 않는 문제 말이다. 결국 코끼리는 2월 24일 그 존재감을 드러낸 후 온 세상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리이나 침공 이후 국제사회는 아시아에서 오래전부터 웅크리고 있던 또 한 마리의 검은 코끼리를 더 이상 외면하기 어렵게 됐다. 바로 중국과 대만의 양안 문제다.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현실화하면서 중국이 양보할 수 없는 ‘핵심 이익’인 대만에 대한 무력 침공을 감행할 가능성이 돌연 현실성을 띠기 시작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해 10월 신해혁명 110주년을 맞아 “완전한 조국 통일의 역사 임무를 반드시 실현할 것”이라며 대만 통일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최근에는 군부대가 해외 작전을 펼치는 근거가 될 ‘비(非)전쟁 군사행동 개요’ 명령에 서명했다. 재난 지원 등이 명분이지만 대만 침공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이달 1일 홍콩의 중국 반환 25주년 기념식 연설에서 시 주석이 ‘일국양제’를 스무 차례나 언급한 것 역시 홍콩뿐 아니라 대만을 겨냥한 메시지로도 읽힌다.

대만과 미국도 점차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 중국이 대만을 공격하면 미국이 개입하겠다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거듭된 ‘말실수’가 진짜 실수라고 여기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는 최근 정상회의에서 중국을 위협 요인으로 명시했다. 미국의 지지를 등에 업은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군부대에서 자국산 대전차 로켓 발사기를 어깨에 멘 모습을 전 세계에 공개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미국과 대만에서는 중국이 인민해방군 창설 100주년인 2027년에 대만을 침공할 가능성이 제법 신빙성 있게 거론된다고 한다.

모두가 ‘설마’ 하는 마음이다. 하지만 올가을 3연임을 확정 짓고 장기 집권에 돌입하는 시 주석이 ‘하나의 중국’을 위한 마지막 퍼즐을 맞추려 할 가능성도, 그 징후도 점차 고조되고 있다. 그리고 ‘설마’가 현실이 될 때 한국이 입을 타격은 가늠조차 하기 힘들다. 한국이 양안 문제를 누구보다 심각하게 인지하고, 상황을 민감하게 파악하고, 철저히 대비해야 하는 이유다. 위기는 서서히, 그러다가 갑자기 찾아온다.

신경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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