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개혁 목표치 빠진 연금 수술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전 한국연금학회 회장)

尹정부, 지속 가능성 강조했지만

재정 안정과 먼 내용들만 거론돼

연금 개혁의 전제 조건은 '투명성'

공무원·軍연금 보고서 공개해야





지난 대선 후보 TV 토론에서 큰 수확이 있었다. 연금 개혁에 합의하자는 안철수 후보의 제안을 대선 후보들, 특히 윤석열 후보가 흔쾌히 동의해서다. TV 토론을 시청하던 필자는 희망 반, 걱정 반이었다. 25년 동안 연금 논의에 참여해온 입장에서 제대로 된 연금 개혁의 어려움을 경험해서였다.

1998년 국민연금 개혁 이후 여러 차례 제도 개편이 있었다. 1998년과 2007년 국민연금 개혁은 그야말로 군더더기 하나가 없다. 기득권은 개혁 시점까지만 인정되고 개혁 이후 모든 개혁 내용이 신구 가입자에게 똑같이 적용된다. 이에 비해 나머지 제도 개편들에서는 신구 입직자 차별 적용과 수많은 경과 규정들이 있다.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적자 폭이 확대되는 배경이다. 이런 연유로 필자는 1998년과 2007년의 국민연금 제도 개편에 대해서만 ‘개혁’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2000년 공무원연금·군인연금 개편 때는 전 세계적으로도 사례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은 국가 지급 보장 조항을 도입했다. 근본적인 제도 개혁 대신에 빠르게 늘어날 적자를 세금으로 충당하도록 한 것이다. 그것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후에 말이다. 2009년 공무원연금 개편에서는 정부 발표와 달리 공무원 재직자 56%의 연금을 한 푼도 삭감하지 않았다. 제도 개편의 고통을 신규 입직자와 재직 기간이 짧은 공무원에게 모두 전가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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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2014년 도입한 기초연금은 돈은 돈대로 들면서도 노인 빈곤율을 크게 떨어뜨리지 못하고 있다. 대신 대통령 선거 때마다 월 10만 원씩 인상하는 포퓰리즘 제도로 전락했다. 2015년 공무원연금 개편 역시 퇴직 수당의 연금 전환율에 대한 고무줄 잣대 적용, 국민연금과 다른 소득 재분배 및 소득 상한 적용을 통해 여전히 신규 입직자의 공무원연금이 국민연금 가입자에 비해 훨씬 유리함에도, 수익비에서 국민연금 가입자보다도 못하다고 잘못 알려져 있다.

국회 첫 시정 연설을 포함해 그동안 윤석열 대통령은 수차례 연금 개혁을 강조했다. 최근에는 여당 정책위원회 주최로 연금 개혁 토론회가 열렸다. 윤석열 정부 연금 개혁의 닻을 올린 것이다. 그런데 이 논의에서 ‘악마는 디테일에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와 여당 정책위는 지속 가능성 확보에 연금 개혁의 방점을 찍고 있다. 그런데 여당 정책위 주최의 토론회에서는 오히려 재정적으로 지속 불가능한 방향의 논의가 주를 이뤘다. 국민연금 급여율을 높이거나 기초연금을 더 지급해야 한다는 내용들이라서 그렇다. 왜 재정 안정 달성과 거리가 먼 이야기들이 거론됐을까. 그것도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는 연금 개혁을 달성하겠다는 윤석열 정부에서 말이다.

우리가 처한 연금 현실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서 나타나는 현상들이다.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 재정 계산 보고서는 여전히 비공개 상태다. 과거 복지부 장관이 연금 개혁의 시급성을 강조하기 위해 자주 인용했던 국민연금 미적립 부채 개념을, 2007년 개혁 이후부터는 정부가 나서서 그 필요성을 애써 부정하고 있다. 모두 1998년과 2007년 성공적인 국민연금 개혁의 전제 조건이었던 투명한 정보 공개가 사라지면서 나타나는 현상들이다. 팩트가 숨겨지다 보니 제도 개편 논의가 진영 논리에 따라 움직인다. 문재인 정부에서 연금을 더 줄 수 있다는 주장이 득세했던 배경이다.

성공적인 연금 개혁의 전제 조건은 성역 없는 정보 공개에 있다. 어렵게 연금 개혁의 닻을 올린 윤 정부가 투명한 정보 공개에 힘을 쏟아야 하는 이유다. 덧붙여 명확한 연금 개혁의 가이드라인도 제시해야 한다. 이해 당사자들에게 합의하라고 하면 시간만 흘려보내면서 연금 개혁이라는 배가 산으로 향할 수도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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