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초등땐 구구단 외기도 힘들었지만 수포자는 아냐…수학은 자유·여유가 중요"

■'필즈상' 허준이 교수 기자간담

고교 수학에 흥미를 갖고 열심히해

대학 4학년까지 진로 심각하게 고민

히로나카 수업 계기로 수학에 빠져

'자유로운 사고가 큰 도움' 한목소리

호기심 추구하는 연구에 격려 필요


“젊은 수학자들이 부담감을 느껴 단기적 목표를 세우기보다는 장기적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을 만한 여유롭고 안정감 있는 연구 환경이 제공됐으면 합니다.”

한국계 최초로 ‘수학계 노벨상’인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39)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겸 한국고등과학원(KIAS) 수학부 석학교수가 한국 수학계에 바라는 점은 자유와 여유였다. 핀란드 헬싱키에 머물고 있는 허 교수는 6일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필즈상 수상 언론 간담회에 온라인으로 참석했다.




허준이 프린스턴대 교수 겸 한국고등과학원 석학교수가 6일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필즈상 수상 언론 간담회에 온라인으로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허준이 프린스턴대 교수 겸 한국고등과학원 석학교수가 6일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필즈상 수상 언론 간담회에 온라인으로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허 교수는 자신을 “한국에서만 교육을 받아본” 국내파라고 소개하면서 “다양한 친구들과 한 반에 40~50명씩 모여 생활하고 싸우기도 했던 경험들이 지금의 저로 성장하는 데 자양분이 됐다”고 회고했다.

그는 초중고 과정과 대학 학부(서울대 물리천문학부), 대학원 석사과정(서울대 수학과)을 모두 한국에서 마친 후 박사과정을 미국에서 밟았다. 그는 특히 일부 보도에서 ‘수포자(수학 포기자)’라고 묘사된 데 대해 “인터뷰에서 초등학교 1학년 때 구구단을 외우는 것으로 부모님이 힘들어 하신 것을 이야기하다 제목이 그렇게 나갔다”며 “적절하지 않다”고 밝혔다. 허 교수는 고교 수학에 대해 “굉장히 재미있어 했고, 열심히 했고, 충분히 잘했다”면서 “학창 시절 과목 중 하나인 수학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정을 못 붙였지만 게임 퍼즐 등 논리적 사고력을 요하는 종류의 문제에는 자연스럽게 끌렸다”고 설명했다.




서울대 자연과학대에 입학했지만 20대 초반 한때 진로를 정하지 못해 방황하다 수학자의 길로 가게 된 과정도 소개했다.

관련기사



그는 “과학이 재밌어 과학 저널리스트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해 (학부를) 그에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물리·천문학과에 진학했다”며 “대학 3·4학년에 진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학업을 쉬다가 우연한 기회에 수학 수업을 들으며 수학의 매력을 처음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서울대에 초빙된 히로나카 헤이스케 선생님의 대수기하학을 들으면서 완전히 빠져들었고 그 상태로 수학자로 살아왔다”고 했다.

허 교수는 서울대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이후 ‘리드 추측’과 ‘로타 추측’ 등 오랜 수학 난제들을 하나씩 증명하며 수학계에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다. 그는 “수학 문제를 풀며 어려움에 맞닥뜨렸을 때마다 선생님과 친구들을 잘 만났다”며 “그분들이 제게는 영웅들”이라고 표현했다.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프린스턴대 교수 겸 한국고등과학원 석학교수가 6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필즈상 수상 언론 간담회에 온라인으로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프린스턴대 교수 겸 한국고등과학원 석학교수가 6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필즈상 수상 언론 간담회에 온라인으로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는 “수학이 역사적으로 발전해오면서 크게 여러 줄기로 나뉘어서 하나하나가 독립적 발전을 했다”며 “서로 다른 연구 분야를 충분히 깊이 연구하다 보면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는 논리적 인과관계가 없는 수학적 대상 사이에 동일한 패턴이 보이는 게 관찰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왜 이런 종류의 동일성이, (서로) 무관해 보이는 구조에서 반복적으로 관찰되는지 이유를 밝혀내는 것에 약간이나마 공헌한 것이 제 연구의 대부분”이라고 했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허 교수처럼 수학이라는 자신의 적성을 찾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게 한 한국 교육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다뤄졌다. 허 교수 본인 역시 여유롭고 안정감 있는 연구 환경이 필요하다는 데 동조했다.

허 교수가 재직 중인 고등과학원의 최재경 원장은 간담회에서 “자유로운 사고와 행동을 하는 수학자가 연구할 때 큰 도움을 받는다”며 “허 교수가 고등학생 시절 학교 적응에 어려움이 있어 자퇴하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이 허락했는데 이 같은 방임주의가 허 교수가 크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김영훈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도 “허 교수가 자신의 재능을 빨리 발견할 수 있었다면 필즈상은 8년 전에 받았을 것”이라며 “대학에서도 큰 프로젝트나 연구비 추구보다는 자신만의 호기심을 추구하는 것들을 격려하는 문화가 자리 잡으면 노벨상도 더 빨리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허 교수는 8일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한다. 13일에는 기자 간담회와 수상 기념 해설 강연을 선보일 예정이다.


강도림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