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글로벌 What] 경제난에 스리랑카 정권 퇴진…'빚더미' 개도국, 불안에 떤다

■ 불길 거세지는 신흥국 위기

라자팍사 가문 18년 족벌정치

민생고發 퇴진 시위에 막 내려

팬데믹후 부채 급증한 신흥국

인플레에 생활고 겹쳐 대혼란

에콰도르 20일째 반정부시위

"스리랑카, 끝 아닐것" 경고음

9일(현지시간) 경제난을 호소하는 스리랑카의 시위대가 수도 콜롬보의 대통령궁 앞에 모여 있다. AFP연합뉴스9일(현지시간) 경제난을 호소하는 스리랑카의 시위대가 수도 콜롬보의 대통령궁 앞에 모여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달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선언한 스리랑카의 고타바야 라자팍사 대통령이 결국 자리에서 물러난다. 경제난으로 들끓는 민심 앞에서 18년간 족벌 정치를 이어온 라자팍사 가문도 버티지 못했다.



외신들은 스리랑카 경제에 이어 정치 질서도 붕괴한 가운데 스리랑카의 위기가 다른 신흥국들로 번질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가나와 에콰도르·파키스탄 등 여러 저개발국들이 급격히 불어난 국가채무에다 인플레이션에 따른 민생고까지 겹쳐 사회적 혼란에 직면한 가운데 경제와 정치의 복합 위기를 맞게 될 국가가 스리랑카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9일(현지 시간) 로이터통신 등 외신들에 따르면 마힌다 야파 아베이와르데나 스리랑카 하원 의장은 이날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격해지자 영상 성명을 통해 “라자팍사 대통령이 13일부로 자신의 직책에서 물러날 것”이라며 “이는 평화적인 권력 이양을 보장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발표했다. 라자팍사 대통령은 이에 대한 별도의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이날 라닐 위크레마싱헤 총리도 사임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라자팍사 대통령은 3월 이후 퇴진을 요구하는 강도 높은 시위가 이어지면서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려왔다. 특히 이날의 격렬한 시위가 퇴진의 직접적 계기가 됐다. 시위대는 대통령궁은 물론 총리 공관에 진입해 사무실을 부수고 불을 질렀다. CNBC는 목격자를 인용해 경찰이 총을 쏘았지만 군중을 진압할 수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으며 로이터통신은 이튿날까지 시위대 일부가 부서진 대통령 관저를 돌아다니고 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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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정국을 뒤흔든 시위는 민생고에서 비롯됐다. 스리랑카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주력 산업인 관광업이 타격을 받으면서 70년 만에 최악의 경제 위기를 겪고 있다. BBC에 따르면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76억 달러 수준이던 외환보유액이 현재 5000만 달러 수준으로 급감했다. 극심한 물자 부족 속에 6월 수도 콜롬보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전년 대비 54.6%나 치솟을 정도로 인플레이션이 극심해졌다.

먹고살기 힘들어진 시민들의 분노는 오랜 기간 스리랑카 정권을 잡아온 라자팍사 가문으로 향했다. 라자팍사 가문은 2004년 사형제 중 둘째인 마힌다가 총리가 되고 이듬해 대통령이 되면서 스리랑카에서 가장 강력한 정치 가문으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2005년부터 2015년까지 대통령으로 군림한 형 마힌다 라자팍사에 이어 2019년에는 동생인 고타바야 라자팍사가 대통령에 당선됐고 나머지 형제도 장관을 지냈다. 하지만 극심한 경제 위기는 굳건한 가문의 힘은 물론 스리랑카 정치 질서마저 붕괴시켰다.

외신들은 다른 신흥국들도 정치·경제적 위험에 직면했다고 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팬데믹 이전 52% 수준이던 신흥국 부채 비율은 현재 67%까지 치솟았다. 블룸버그통신은 엘살바도르와 가나·이집트·튀니지·파키스탄 등이 스리랑카의 전철을 밟을 위험이 있는 국가로 꼽는다.

일부 국가에서는 실제 정치 불안이 가시화하고 있다. 에콰도르에서는 심화되는 경제난에 지난달 기예르모 라소 대통령의 사퇴 요구 시위가 20일가량 계속됐다. 시위는 지난달 말 가톨릭 교회의 중재로 잦아들었지만 외신들은 지금 상태를 “깨지기 쉬운 휴전”이라며 불안감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서아프리카 가나에서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검토할 정도로 위기가 고조되고 고물가가 이어지면서 수백 명 규모의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김흥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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