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1300원을 넘어 다시 오름폭을 확대하고 있다. 환율은 지난달 23일(1301원 80전)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7월 13일(1315원) 이후 12년 11개월 만에 처음 1300원을 넘었다. 다만 이후부터 글로벌 위험 선호 회복과 함께 한동안 1300원을 밑돌았으나 이달 초부터 1300원대를 다시 위협하기 시작했다. 5일 이후엔 하루(7일, 1299원 80전)를 제외하고 모두 1300원을 넘었다. 5일은 장중 1310원마저 돌파했다.
그동안 환율 1300원은 위기 신호로 여겨졌다. 원·달러 환율이 1300원을 넘은 것은 외환위기(1997년), 닷컴버블 붕괴(2001년), 글로벌 금융위기(2009년) 등 세 차례뿐이다. 외환·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우리나라 펀더멘탈이 흔들리자 원화 가치가 크게 하락(원·달러 환율 상승)했기 때문이다. 위기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보니 국내 거시 경제에서 가장 민감한 이슈가 환율 안정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이번에도 환율 1300원이 우리 경제의 위험 징후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특히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6%대를 돌파하는 등 인플레이션 우려가 큰 상황에서 환율이 우리나라 경제의 최대 리스크가 됐다는 지적이다. 반면 이번만큼은 환율 1300원을 다르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반대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 달러화를 제외한 대부분 통화 가치가 떨어지는 상황이고 그동안 국내 연기금과 개인 투자자들이 해외 투자를 늘리면서 환율 수준 자체가 높아졌다는 것이다. 환율 1300원을 두고 다른 해석이 나오는 셈이다.
한국금융연구원이 8일 개최한 ‘미국의 통화긴축 강화와 한국의 대응 세미나’에서 송치영 국민대 교수는 최근 원화 가치 하락이 다른 통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다고 지적했다. 송 교수는 “엔화(일본), 리라화(터키), 페소화(멕시코) 정도를 제외하고 원화 가치 하락이 가장 크다”라며 “환율이 많이 오르고 외환보유액도 줄어들면서 외환시장 압력지수가 2001년 9월 유럽 재정위기 때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했다. 이어 “불안한 측면이 있지만 위기 정도까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면서도 “원화 가치 회복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같은 세미나에서 류현주 한국은행 국제금융연구팀장은 개인적인 의견을 전제로 최근 환율 수준에 대해 우려할 정도가 아니라고 평가했다. 류 팀장은 “2020년 코로나19 이후 원화 환율은 달러 인덱스(DXY)와 매우 유사하고 큰 차이가 없다”며 “원화만 불안한 것이 아니라 유로화의 달러 환율이 1.01달러로 그동안 있지도 않던 비율이 됐고 엔·달러 환율도 136엔(11일 기준 137엔)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DXY는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미 달러화 가치를 보여주는 지표다.
키움증권에 따르면 지난달 23일 기준 연초대비 달러화 지수는 9.2% 상승했다. 같은 기간 한국 원화 가치가 9.4% 하락했고 영국 파운드화(-9.4%), 유로화(-7.4%), 스위스 프랑(-5.3%), 호주 달러(-5.0%) 등이 비슷한 수준으로 가치가 하락했다. 일본 엔화는 -17.3%로 다른 통화 대비 큰 폭 절하됐다. 과거 원·달러 환율이 1300원을 넘었던 2008~2009년 당시에는 달러화지수가 80~85 수준이었으나 7월 12일 기준으로 108을 넘어선 상태다.
내국인의 해외주식투자가 늘어나면서 원화 가치 하락이 불가피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1년 말 준비자산(4631억 달러)을 제외한 한국의 대외 금융자산(거주자 대외투자) 잔액은 1조 7153억 달러로 전년 말보다 1778억 달러 증가했다. 개인의 해외주식 투자가 늘었을 뿐만 아니라 국민연금도 해외 투자를 늘리는 상황이다. 이러한 움직임이 경상수지 흑자 축소와 겹치면서 국내 외화공급을 줄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시장에서도 환율 1300원을 뉴노멀(새로운 기준)로 보는 시각이 많다. SK증권은 이번 원·달러 환율 1300원은 고달러, 고위험, 고유가의 조합인 만큼 뉴노멀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종료되거나, 일본의 완화적 통화정책이 긴축으로 전환되거나, 미국 연방준비제도(Feb·연준)의 긴축이 후퇴 조짐을 보이기 전까지는 달러 강세가 지속되면서 1300원이 뉴노멀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문제는 환율이 오버슈팅(일시적 급등)하면서 시장에서 예상치 못한 수준까지 오르는 경우다. 시장에서도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 미국 연준의 긴축 강화, 중국 경기 둔화 우려, 국제유가 상승 등 글로벌 요인이 환율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는 에너지를 수입하는 과정에서 달러화 수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글로벌 투자 심리를 위축시키는 동시에 국제유가 등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 만큼 전쟁 전개 흐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내 요인 중에서는 우리나라 무역수지 적자가 환율 상승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평가다. 국제유가 급등에 따른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수입액이 수출액보다 크게 늘어나면서 국내 유입되는 달러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달 1~10일 무역수지가 55억 2800만 달러 적자라는 것이다. 올해 누적 적자는 158억 8400만 달러에 이른다. 이달까지 적자가 발생하면 2008년 6~9월 이후 13년 만에 4개월 연속 적자가 된다. 류 팀장도 “환율 불안을 굳이 우리나라 경제 불안으로 확대해서 볼 필요가 있나 싶다”면서도 “경상수지 흑자를 어느 정도 유지하고 수입에서 원자재 충격을 어느 정도 흡수하느냐가 현 상황에서 중요하다”고 했다.
※ ‘조지원의 BOK리포트’는 국내외 경제 흐름을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도록 한국은행을 중심으로 경제학계 전반의 소식을 전하는 연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