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투자가들이 그동안 높은 안전성과 수익률로 각광받던 중국 정책금융기관 채권을 팔아 치우기 시작했다. 서방의 광범위한 대(對)러시아 제재에도 러시아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중국 정책금융기관에 대한 미국의 ‘세컨더리보이콧’ 발동 가능성이 투자가들의 불안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1일(현지 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전 세계 투자가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2월 말 이후 최근까지 매도한 중국 정책금융기관 채권 물량은 270억 달러(약 35조 원)에 달했다. 이는 글로벌 투자가들의 전체 보유 물량 중 약 16.7%에 해당하는 규모로 같은 기간 매각된 위안화 표시 채권(610억 달러)의 약 44.3%에 달한다.
국채만큼 안전하다고 여겨진 정책금융기관 채권이 집중 매도 대상이 된 것은 이들 기관이 서방의 제재를 받는 러시아에 막대한 자금을 빌려준 사실이 부각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예를 들어 중국 3대 정책금융기관인 중국개발은행과 중국수출입은행이 2000년부터 2017년까지 러시아 국영기업과 금융기관에 대준 자금은 730억 달러를 넘는다. 이들은 지난해 말 러시아 북극 액화천연가스(LNG) 개발 프로젝트에 25억 4000만 달러를 빌려주기도 했다.
미국은 아직 러시아와 거래하는 제3자까지 제재하는 세컨더리보이콧을 단행하지 않고 있지만 중·러 간 유착이 긴밀해질수록 발동 가능성이 커진다는 우려가 투자가들 사이에서 커지고 있다. 이 경우 중국 금융기관이 직격타를 맞게 되는 만큼 투자가들이 잠재적 위험을 고려해 이들 채권에서 발을 빼고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최근의 매도세가 러시아 때문만은 아니라는 주장도 적지 않다. 투자회사 루미스세일스의 보 좡 시니어애널리스트는 “외국인투자가들이 위안화 표시 채권을 파는 주된 요인은 달러 대비 위안화 약세와 (미국 채권과의) 수익률 격차 축소”라고 설명했다. 금융중개 업체 튤렛프레본에 따르면 미국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8일 기준 3.10%로 중국개발은행 채권 수익률인 3.08%를 웃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