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일 전념하면 온열질환자…폭염대책 무색한 자가진단표

정부, 폭염 대책으로 배포한 진단표보니

'맡겨진 일 한다' 등 주관적 문항 수두룩

진단표로 작업중지 못해…중대법 '역효과'

5년간 29명 사망했지만, 대책은 권고 수준

사진제공=고용노동부사진제공=고용노동부




최근 무더위로 산업현장 온열질환에 대한 우려가 다시 높아진 가운데 스스로 온열질환자인지를 판단하는 정부의 자가진단표가 부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진단표가 객관적으로 온열질환자를 판별하지 못한다면, 근로자와 기업 모두 활용할 유인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진단표를 두고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달라진 현장 상황이 고려되지 않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13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고용부와 일선 지청은 야외근로자용 온열질환 특성 자가진단표를 현장에 배포 중이다. 이 진단표는 올해 행정안전부가 폭염 종합대책으로 만들었다.



진단표는 10개 문항에 해당하는 갯수대로 온열질환 취약도를 나타낸다. 정부는 폭염기간 당일 이 진단표를 현장에 배포하는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근로자가 이 진단표를 토대로 폭염 시 현장 작업을 쉴 수 있는 권한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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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 문항 상당수가 주관적이라는 점이 활용도를 낮출 수 있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대표적인 문항은 '최근 힘든 일이 있어 심신이 지쳐있다' '나는 일을 시작하게 되면 쉴새 없이 전념하게 된다' '나에게 맡겨진 일을 가급적 스스로 한다' 등이다. 이런 문항은 온열질환 유무에 관계없는 질문이다. 온열질환자를 가리는 게 목적인 진단표란 취지에 어울리지 않는 질문도 있다는 지적도 가능하다. '온열질환으로 증상을 경험한 적이 있다'로 묻는 게 아니라 '온열질환으로 증상을 경험한 적이 없다'고 묻는 식이다. 고용부 내에서도 질문이 주관적이다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특히 현장 책임자가 이 진단표를 활용하기 꺼릴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올해 1월27일 시행된 중대재해법은 열사병 사망자 1명 또는 1년 이내 열사병 환자가 3명 이상 발생하면 적용받는다. 중대재해법은 현장 근로자 의견을 듣는 등 기업의 안전보건관리체계 준수 의무를 따진다. 열사병 환자가 발생했을 경우 수사기관인 고용부와 근로자는 기업이 자가진단표를 근거로 기업의 안전관리 의무 소홀을 지적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근로자 입장에서 ‘자가진단표상 온열질환자였는데, 기업이 작업을 강행했다’는 식으로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기업 입장에서는 이 상황을 막기 위해 자가진단표 자체를 활용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정부는 폭염 때마다 온열질환 대책을 내놓고 있다. 올해도 대대적인 현장 점검과 안전수칙 준수를 당부하고 있다. 온열질환 사망사고가 여전해서다. 2016년부터 작년까지 여름철 발생한 온열질환 재해자는 182명이다. 이 중 29명이 목숨을 잃었다. 폭염 기간에는 일반적인 사망산재도 느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대책이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강훈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본부 차장은 "현재 폭염에 대한 법제가 미흡해 폭염 대책은 늘 권고와 가이드 수준에 머물고 있다"며 "자가진단표도 이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폭염재해를 예방할 수 있는 대책은 작업중지제도지만, 폭염을 이유로 근로자가 작업중지를 요구할 수 없는 실정”이라고 강조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온열질환은 개인차가 있기 때문에 주관적 판단이 담긴 진단표가 합리적”이라며 “본인뿐만 아니라 동료, 사업주도 온열질환에 대한 관심과 경각심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세종=양종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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