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시도 때도 없이 비가 내리면, 외부활동을 자제하고 온종일 집에 있고 싶어진다. 주말이 아닌 평일에 마음이 이끄는 대로 온종일 집에 머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마흔, 부부가 함께 은퇴합니다>의 저자 김다현 씨는 햇살 좋은 날 산책을 즐기고 언제든 마음이 동하면 숲으로 가 산책하는 일상을 살고 있다. 저자가 이런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건 조기 은퇴를 위해 5년간 철저한 준비를 했기 때문이다.
5년. 누군가에겐 길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짧게 느껴질 수 있는 시간이지만, 은퇴를 앞둔 중년에게는 길지도 짧지도 않은 은퇴 이후의 삶을 위해 투자하기 적당한 시간일 수 있다. 저자가 차근차근 이뤄낸 성공적인 조기 은퇴 비결을 따라가다 보면 이제 곧 닥칠 은퇴에 대한 두려움이나 막연함이 조금이나마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은퇴’는 누구에게나 막연하고 두렵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은퇴를 자의로 정했든, 타의로 정했든 말이다. 저자는 은퇴 날짜를 정하고 가장 먼저 ‘부부 공동 조기 은퇴 기획서’를 가능한 한 촘촘하게 꾸렸다. 이렇게 나름 계획된 은퇴를 맞이하는 저자였지만, 은퇴 이후 삶에 대한 막연함과 불안함은 중장년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돈을 더 모으면 은퇴 이후에도 괜찮을 거야’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을 때 그가 깨달은 것은 ‘은퇴 이후 어떤 하루를 보내야 행복할까’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저자는 그날 이후 자신이 좋아하는 일들을 하나씩 떠올려보기로 했다. 돈을 벌기 위한 일이 아니라 은퇴 후 행복하게 지내기 위한 일을 찾기 위해서 말이다.
돈이 없는 은퇴 후의 삶은 두려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돈’에만 꽂혀있기에는 은퇴 이후의 삶이 너무 길다. 저자처럼 잘할 수 있는 일, 행복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다 보면 많지는 않더라도 매월 정기적인 소득이 발생하는 일로 연결이 되기도 한다.
‘은퇴 준비=돈’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필요는 있지만, 은퇴를 준비하는 데 있어 은퇴자금 마련이 빠져서는 안된다. 저자 역시 은퇴 후 매월 필요한 생활비를 계산해 5년간 모았다. 책에는 금융맹이었던 부부가 은퇴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현실적인 자금계획을 세우는 과정이 상세히 적혀있다. 특히 저자가 연금을 중심으로 은퇴자금을 설계한 점이 눈여겨볼 만한 지점이다.
중장년들이 이 책을 읽으며 크게 공감할 부분이 있다면, 바로 은퇴 실전돌파편이다. 많은 중장년이 ‘내’가 아닌 회사의 이름값에 괜히 당당해지는 기분에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회사의 이름이 사라지는 ‘은퇴’가 더 막연하고 두렵게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저자 역시 그랬다. 회사의 이름값에 당당해지던 그런 때를 살다 이젠 이름 석자만 남은 삶을 살게 됐다. 저자는 은퇴 후 누군가 직업을 물으면 당당히 “백수”라고 말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중장년들도 나의 가치를 나타내던 명함이 사라지는 것에 두려워하지 말자. 명함이 사라진다는 것은 비로소 온전한 ‘나’로 살아갈 수 있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차근차근 계획한 은퇴였지만, 불안이라는 감정은 자주 나를 공격해왔다. 하지만 은퇴를 하고 난 이후 오히려 불안이 사라졌다. 회사라는 바깥세상에는 가능성이 있었다. 은퇴는 나를 가능성의 세계로 이끌었다. 난 아직 정의되지 않은 사람이다. 이제 나는 회사원이 아닌 나를 정의할 다른 단어를 찾고 있다.” - 본문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