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금융위원회가 ‘125조 원+α’를 투입해 금융 부문 민생안정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는 상황에서 소상공인·서민·청년 등 취약 계층의 부담을 덜고 경제적 재기를 지원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전체 가계대출 1860조 원 중 5%인 93조 원가량이 부실 위험이 큰 취약차주로 추산된다. 취약차주는 과거 금리 인상 시기에 연체율이 1.9%포인트 오르는 등 금리 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해왔다. 이번 정책으로 당장 금리 인상기 취약차주의 대출 부실부터 막겠다는 것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은행들에 또 고통 분담을 요구한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정부 대책에서 빠진 부분에 대해서는 금융사가 답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대책의 초점은 소상공인·자영업자와 청년층에 맞춰졌다. 금리 인상으로 직접 타격을 받는 ‘영끌족’을 겨냥해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을 고정금리 대출로 전환해주는 안심전환대출도 당초 계획보다 5조 원 추가한 25조 원 규모로 올해 공급된다. 저소득 청년층은 추가로 0.1%포인트 금리를 인하해 4%대 초반에 이용할 수 있다. 전세대출 시 이자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주택금융공사의 전세대출 보증 한도를 기존 2억 원에서 4억 원으로 높인다. 버팀목 전세대출 한도는 수도권 기준 기존 1억 2000만 원에서 1억 8000만 원으로 늘어나고 대상 전세금 상한도 기존 3억 원에서 4억 5000만 원으로 올린다. 전월세대출 원리금 상환액의 소득공제도 연간 300만 원에서 400만 원으로 확대된다.
청년층의 신속한 회생·재기를 위해 기존의 채무 조정 프로그램 신청 자격이 미달되더라도 이자 감면, 상환 유예 등을 지원하는 내용의 ‘청년특례채무조정제도’도 1년간 한시적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소득·재산 등에 따라 저신용 청년의 이자를 30~50% 감면해준다. 최대 3년의 원금 상환 유예기간을 부여하고 이 기간에 이자율도 3.25%로 낮게 적용한다. 대상은 만 34세 이하 신용 평점 하위 20% 이하의 청년층으로 최대 4만 8000명이 1인당 연간 141만~263만 원의 이자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9월 종료 예정인 소상공인·자영업자 대출의 만기 연장 상환 유예 조치를 10월 1일부터 은행이 자율적으로 지원하도록 추진한다. 지난해 말 기준 자영업자·소상공인의 부채 규모는 916조 원(263만 명)이다. 이 중 부동산임대업을 제외한 정책 대상의 채무 규모는 660조 원(220만 명)이다. 660조 원 중 만기 연장, 상환 유예를 받은 게 130조 원, 그 가운데 소상공인 대출은 64조 원(48만 명)으로 집계됐다. 금융위는 관련 조치를 받은 소상공인 48만 명 중에서 다시 은행에 만기 연장, 상환 유예를 신청할 경우 은행이 신용등급·리스크 심사 등을 거쳐 최대 95%를 재연장해주도록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은행이 재연장해주기 어려운 부실 차주와 이미 폐업·부도 처리한 소상공인 대출은 30조 원 규모의 ‘새출발기금’을 통해 채무 조정을 받도록 유인한다. 채무 조정 시 거치 기간은 최대 1~3년, 최대 10~20년 장기·분할 상환으로 대출금리도 인하해준다. 90일 이상 연체한 부실차주에 대해서는 원금의 최대 90%를 감면해준다. 2020년 도입해 네 차례 만기 연장과 상환 유예를 연장함으로써 커진 소상공인 대출 부실을 차주·금융권·정부가 모두 떠안는 구조라는 게 금융위 측 설명이다.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7% 이상의 고금리 대출을 저금리 대출로 전환해주는 프로그램도 8조 7000억 원 규모로 실시된다.
이외에도 소상공인의 리모델링, 사업 내실화를 위해 42조 2000억 원 규모의 자영업자 맞춤형 저리 신규 대출을 지원하고 제도권 금융을 이용하기 어려운 최저신용자에게 특례 보증 등을 실시한다. 총 125조 원이 넘는 사업들로 올해 3분기 내 추진될 예정이다.
이 같은 정책을 놓고 은행권은 국내외 경제 변동성이 큰 상황에서 필요한 정책이라면서도 은행들의 부담이 커졌다며 우려하는 분위기다. 사실상 만기 연장, 상환 유예의 재연장 부담을 은행권에 맡긴 데다 은행권에서 자체적으로 7% 이상 고금리 차주에 대해 금리 1%포인트를 인하하고 성실 상환 신용 차주에게는 원금을 감면해주는 등 지원책도 내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저신용 청년층을 위한 채무 조정까지 신설되면서 도덕적 해이를 부추긴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김 위원장은 “부채 문제에 대해서 일차적인 책임은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과 빌린 사람 간에 일단 해결해야 된다”면서 “2030세대는 우리나라를 이끌어나갈 미래의 아주 핵심이라 선제적으로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빨리 마련해주지 않으면 우리 사회가 나중에 부담해야 할 비용이 훨씬 더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9월 이후 만기 연장, 상환 유예 재연장 시 은행의 부담이 얼마나 늘어날지 추산할 수 없으나 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