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불법 파업에 대한 엄정 대응이 이뤄지지 않는 등 사회 전반의 ‘공권력 부재’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과감한 규제 철폐로 기업을 다시 뛰게 하겠다던 공약과 달리 기업을 처벌하는 형벌 중심의 규제 입법이 계속 쏟아지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경제계 주요 전문가들은 “기업이 투자 계획을 쏟아내고 있지만 켜켜이 쌓인 규제로 한 발 내딛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이대로는 ‘기업 하지 말라’는 얘기와 같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이후 글로벌 공급망 위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고금리와 경기 침체 우려 등 위기 요인들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민간 주도 경제성장’을 거듭 촉구했다. 규제 완화가 매우 시급하지만 현재의 입법 제도 아래에서는 극적인 방향 전환이 이뤄지기 어렵다며 입법 시스템에 대한 구조적 재편 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기업의 활력을 되살릴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한 서울경제 펠로(자문단)·전문가 좌담회에서다. 이들은 “매일같이 새로 쌓이는 규제들을 시스템적으로 막을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좌담회에는 정만기 한국산업연합포럼 회장과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조중휘 인천대 임베디드시스템공학과 교수가 참석했다.
◇참석자-정만기 한국산업연합포럼 회장,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조중휘 인천대 임베디드시스템공학과 교수. 사회-서정명 산업부장
◇尹정부 규제 개혁 미흡…“달라진 게 없다” 질타
전문가들은 출범 2개월이 지난 현 정부의 ‘규제 완화’에 대해 “미흡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다방면에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핵심 대못 규제에 대해서는 별다른 해결책을 내놓고 있지 못하고 있고 새로운 규제 때문에 애써 푼 규제가 효과를 내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규제 완화는 어느 정부나 일상적으로 하던 얘기였고 현재도 여전히 규제 완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예를 들어 반도체 산업의 경우 규제가 완화되고 있지 않느냐고 하지만 내부적으로 보면 오히려 옥죄는 규제가 더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윤석열 정부가 규제 완화를 내세우면서 등장했지만 여당의 의석수가 과반에 미치지 못하는 상태이다 보니 관련 법을 정비하는 데 한계가 생긴다”며 “문제는 정부의 규제 완화 의지가 정말 있는지도 의심스럽다는 점이다. 규제 개혁을 한다고 말은 하지만 오늘도 규제가 생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 명예교수는 “규제 하나를 없애도 국회에서 규제가 10개씩 새로 생긴다”며 “이제 규제가 켜켜이 쌓여 국민과 기업들이 수용할 수 있는 한계를 넘긴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사소한 법령 위반도 '징역형' 옭아매
기업 족쇄 풀려야 민간주도성장 실현
파견·대체근로 등 노동유연성도 시급
제도적인 규제 개혁뿐 아니라 불법 파업에 대한 엄정 대응 등 법치주의 확립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질타가 이어졌다. 최 명예교수는 “공권력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문재인 정부와 달라진 게 없다”며 “지난해에 노동조합·노동관계조정법이 개정돼 조업을 방해하는 형태로 노동쟁의를 해서는 안 된다고 했는데 이 법이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기업은 대항권이 전혀 없고 노조는 힘이 세다 보니 이런 식으로 불법이 용인되고 경찰도 움직이지 않는다”며 “노조의 불법적 행위가 있을 때 정당하게 대체 인력을 투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 회장은 “민주노총 화물연대 파업 문제도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표를 의식하는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국회·정부가 규제를 만들 때는 성장을 막기 위해 만든 건 아니었을 것이고 좋은 의미로 만들었겠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규제라는 건 결국 비용인 만큼 규제 완화가 기업 경쟁력을 높여주는 길이고 이를 통해 정부가 세수를 확보하고 고용을 창출할 수 있다”면서 적극적인 규제 개혁 드라이브를 촉구했다.
◇“형벌 많아 기업들 숨막혀…해외에선 韓 근무 기피”
전문가들은 이전 정부부터 수차례 제기돼온 과도한 형벌주의, 경직된 노사 관계, 보수적인 신산업 지원 체계 등을 빠르게 풀어야 할 규제로 지목했다. 중대재해처벌법 등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기업 처벌 법안이 즐비해 경영 활동을 위축시키고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려 해도 꽉 막힌 행정 체제가 성장의 걸림돌 역할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 명예교수는 가장 먼저 해소해야 할 규제로 ‘과도한 형벌주의 규정’을 꼽았다. 그는 “법령에 형벌이 너무 많아서 기업들이 숨을 쉴 수 없는 지경”이라며 “원래 형사법이란 고의가 있어야 처벌이 가능한데 중대재해법의 경우 고의·과실 여부를 따지지 않고 ‘무과실책임’처럼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 회장 또한 “경제 법규 위반의 경우 과거에는 주로 행정 제재를 통해 과태료를 매기는 방식으로 처리해왔는데 입법 경쟁이 나타나면서 사소한 법령 위반도 형벌을 부과하는 식으로 바꿔놓았다”며 “이러다 보니 기업인들 중에 전과 없는 사람이 없다. 한 외국계 완성차 업체 사장은 ‘해외 직원들이 한국에서 근무하는 것을 기피한다. 조금만 잘못해도 전과자가 되는데 누가 오려고 하겠느냐’고 하더라”고 현장의 고충을 토로했다.
실제로 자동차관리법은 중고차를 판매할 때 차량에 ‘사고기록장치’ 설치 여부를 알리지 않을 경우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또 같은 법은 허가 없이 자동차 번호판을 뗐을 때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했다. 정 회장은 “대단한 일도 아닌 것을 모두 징역형으로 처벌하려고 하고 있다”며 “행정 제재로 충분한 사안을 형벌로 만들면서 ‘전과자 양산 제도’화하고 있다”고 했다.
주주의 권리 신장에만 치우쳐 기업이 글로벌 헤지펀드들의 먹잇감이 되고 있는 점에 대해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최 명예교수는 “상법상 감사위원 분리 선출, 최대주주 의결권 3% 제한 등의 여파로 주주 제안이 굉장히 많이 일어나고 있다”며 “헤지펀드에만 유리하게 돼 있고 기업의 방어 수단이 없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에서만 기업을 죄악시하고 있는데 ‘해서는 안 되는 법’들은 빠르게 고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각종 규제와 지원 법안들이 현장의 현실과 맞지 않아 기업에 부담이 되고 있다는 점을 꼬집었다. 조 교수는 “일명 ‘반도체특별법’으로 불리는 국가첨단전략산업특별법이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산업 현장에서 보면 적합하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다”며 “반도체 산업의 경우 화학물질을 엄청나게 쓸 수밖에 없는데 화학물질의 등록·평가 등에 관한 법률 등은 이런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또 핵심 대기업이 수도권에 존재해 관련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이 근처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지만 수도권 공장 증설 제한 등이 발목을 잡고 있다”고 말했다.
공정거래법, 공정위의 기업 조사 등이 지나치게 기업에 재갈을 물리는 형태로 돼 있다는 점도 지적됐다. 최 명예교수는 “계열사 부당 지원, 사익 편취 규제 등은 근거가 굉장히 불확실해 계열사 설립을 통한 기업의 시너지 효과 창출을 죽이고 있다”며 “공정위도 무소불위의 권한을 갖고 막무가내로 기업을 뒤집어놓는데 과징금 등 처분을 보면 명확한 기준도 없다”고 꼬집었다.
노동 관련 규제 개선과 관련해서도 정 회장은 “지금과 같은 위기의 경제 환경에서 볼 때 노동 유연성이 필요한 시기”라며 “해고가 원활하지 않은 상황에서 내부 시장에서 근로시간이나 파견·대체근로 등 여러 유연성을 줘서 기업이 환경 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기업 대표들과 얘기를 나눠보면 회사 상황이 좋아져도 나중에 경제가 어려울 때 해고하기 어려울까 걱정돼 채용을 못 하겠다고 한다”며 “전 세계에서 이만큼 유연성이 없는 나라는 한국뿐일 것”이라고 토로했다.
최 명예교수는 과도한 상속세에 대해서도 “한국의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은 상속세 때문이다. 주식 시가로 상속세를 결정하니 상속을 앞둔 기업인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상속세를 낮추려고 하지 않겠느냐”며 “기업가정신에 불을 붙이려면 ‘마음대로 주가를 올리고 기업을 키워라. 그리고 자손에게 그대로 물려줘라’라는 신호를 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입법권 쥔 국회·앞길 막는 법률…"시스템 개선 필요"
전문가들은 산적한 규제 관련 문제가 단기간에 해소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데 같은 의견을 보였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국회가 입법권을 쥐고 매일같이 새로운 규제를 쏟아내고 있는 데다 행정부 또한 기본적으로 경직된 문화로 기업의 신사업 발굴에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 회장은 “규제 개혁이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규제 법률을 만드는 집단이 국회라는 점”이라며 “국회의원의 평가를 ‘입법 건수’로 하다 보니 일하는 척을 하기 위해서라도 과도하게 입법을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하는 척을 해야 하니 과태료 처분이었던 것을 형벌로 바꾸고 징역 1년 이하였던 것을 징역 2년 이하로 바꾸는 식으로 ‘건수’를 채우는 것”이라며 “진짜 규제 개혁을 하기 위해서는 미국이나 영국이 했던 것처럼 새로운 규제 법안을 만들려면 기존 관련 법안을 2~3개 폐지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명예교수는 우리나라의 법률 시스템에 대한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법률은 무엇을 할 수 있고, 그 외는 할 수 없는 방식인 ‘포지티브 시스템’으로 돼 있다”며 “반면 일본의 경우 ‘안 되는 것 외에는 다 할 수 있다’는 네거티브 시스템인데 그러다 보니 새로운 아이디어가 어마어마하게 생긴다. 근본적으로 그렇게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말로는 기업 편을 들어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핵심 반도체 기업들이 공장을 지을 때 주민들과 갈등이 발생하면 팔짱만 끼면서 지켜보고 있다”며 “양쪽의 올바른 길을 살펴보기 위한 공론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기업들이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한국은 중견기업이 늘어야 하는데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커지면 혜택이 늘어나는 게 아니라 옥죄는 것만 늘어난다”며 “그러다 보니 중견기업으로 성장하지 않고 중소기업에 머물려는 ‘피터팬 증후군’이 나타난다. 그러면 기업이 커지지 않고 쪼개지면서 성장을 멈추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규제 하나 없애면서 새 규제 10개씩
입법 시스템 '네거티브식' 전환하고
대학지원도 강화, 인재양성 서둘러야
좌담회에서는 결국 근본적인 규제 개혁을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는 해법으로 이어졌다. 참석자들은 입법부 개혁, 정부의 운영 시스템 개선, 교육 개혁 등 다방면의 해결책을 제시했다.
정 회장은 “산업부 차관 시절 157개의 규제를 발굴해 완화하려 했는데 각 부처에 가서 전달했더니 고작 7개만 풀어준다고 했다”며 “고민 끝에 대통령에게 ‘모든 규제를 다 푸는 것으로 원칙을 정하고 꼭 존치가 필요한 것만 보고하도록 하자’고 건의해 받아들여졌는데 그러자 거꾸로 150개의 규제가 풀어지고 7개만 남더라”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신산업을 성장시키려면 이런 방식으로 해야 한다.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전환해 꼭 필요한 규제만 남기는 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의 과도한 입법 기능을 견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최 명예교수는 “국회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의 규제 기관이 돼서 규제 하나를 없앨 때마다 10개씩 규제를 쏟아낸다. 이 시스템을 가장 먼저 바꿔야 한다”며 “정부는 입법 하나를 하려면 절차가 너무 복잡하다 보니 세세하게 절차를 밟기보다 국회의원에게 부탁해 청탁 입법을 하고 있다. 이렇게 정·관 유착이 나타나고 부실한 법안이 마구 양산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본의 경우 입법조사처에서 엄격하게 법안을 심사하다 보니 국회의원과 정부 모두 신중하게 법을 만든다”며 “한국도 이렇게 하려면 국회의원이 입법 활동에서 관련 평가를 면제받을 수 있도록 한 행정규제기본법 규정을 폐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조 교수는 행정부 부처 간 경직된 문화를 질타했다. 그는 “산업부가 규제를 없애려고 해도 환경부·고용노동부·국토교통부 등 각종 부처에서 이해관계 때문에 이를 가로막는다. 공무원들이 규제를 앞장서 만드는 꼴”이라며 “입법부의 책임도 중요하지만 행정부 또한 더 노력해야 한다”면서 정부의 내부 문화 개선을 촉구했다.
‘교육 혁신’도 중요한 과제로 언급됐다. 정 회장은 “우리나라는 초중고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일 정도로 자금이 풍부한데 반대로 대학은 자금이 없어서 우수 교수를 확보하지 못해 열악해지고 있다. 교육 구조가 ‘절름발이’처럼 돼버린 것”이라며 “비뚤어진 교육 자원 배분 문제부터 고쳐서 대학의 황폐화를 막아 초중고 때 똑똑했던 학생이 대학 진학 이후 경쟁력이 떨어지는 문제를 하루빨리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대학에서 36년간 교육 활동을 했지만 재정투자가 점점 줄다 보니 대학의 실험·실습 시설이 엉망이 되고 있다”며 “좋은 환경에서 훌륭한 교수에게 교육을 받아 배출하면 기업이 우수한 인재를 받아들이는 식으로 구조가 이뤄져야 한다. 교육부가 국가 산업에 기여하려면 대학이 실험·실습 시설을 확충하고 우수 교원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리=진동영 기자 사진=오승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