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피그플레이션






2019년 10월 리커창 중국 총리가 산시성 시안을 시찰하던 도중 러우자모 가게를 깜짝 방문했다. 러우자모는 잘게 찢은 돼지고기를 넣어 만든 중국식 햄버거다. 리 총리는 가게 주인에게 돼지고기 가격 인상 폭과 매출 추이를 물어보는 등 현장에서 민심을 다독거렸다. 정부 수뇌부가 민심 달래기에 나선 것은 당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으로 돼지고기 가격이 1년 새 두 배 가까이 폭등하면서 ‘피그플레이션(pigflation)’ 해결이 발등의 불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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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그플레이션은 돼지를 뜻하는 ‘pig’와 물가 상승을 의미하는 ‘inflation’의 합성어다. 세계 최대 돼지고기 생산·소비국인 중국에서 돼지고기가 물가에 큰 영향을 주다 보니 생긴 말이다. 돼지고기는 중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를 좌우하는 핵심 품목이다. 중국의 CPI 산정 과정에서 돼지고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3.32%에 달한다. 2019년 11월 중국의 CPI는 돼지고기 파동 여파로 전년 동월 대비 4.5% 올라 7년 10개월 만에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다. CPI를 ‘중국돼지지수(China Pig Index)’라고 부르는 이유다.

돼지고기는 미국과 중국 간 무역 전쟁의 단골 메뉴이기도 하다. 2020년 초 미중 무역 협상에서 중국 정부가 저자세를 보인 것도 돼지고기 파동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봐야 한다. 당시 중국 정부는 고위급 협상을 통해 미국산 돼지고기와 돼지 사료인 대두를 포함해 연간 400억 달러 이상의 미국산 농축산물을 수입하기로 전격 합의했다. 돼지고기 가격 폭등에 따른 민심 이반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돼지고기 가격이 공산당 체제의 안정성 여부를 좌우한다”는 말도 나온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사료용 곡물값 급등에 폭염까지 겹쳐 중국에서 피그플레이션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이달 초 돼지고기 도매 가격은 ㎏당 30.87위안으로 전년 동기 대비 41.1%나 치솟았다. 중국발 돼지고기 파동은 세계 육류 시장을 뒤흔들고 곡물 가격까지 부추길 가능성이 높다. 우리도 식량 안보 차원에서 곡물의 국내 자급 기반을 넓히고 수입 다변화를 서둘러 고물가에 시달리는 서민들의 고통을 덜어줘야 한다.

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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